[란코프] 여성의 정치 지위가 매우 낮은 북한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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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일은 국제부녀절이었습니다. 이 날은 세계 여성들이 평등한 권리, 특히 평등한 정치참여 권리를 위해 싸운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북한에서도 국제부녀절을 공휴일로 기념합니다. 관영언론들은 남한을 비롯한 외부세계의 여성에 대한 차별 등을 시끄럽게 비난하고 북한의 성과를 시끄럽게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여성들의 객관적인 상황을 살펴봅시다. 북한 여성문제는 꽤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장점도 있는데 단점도 많습니다. 흥미롭게도 제일 중요한 장점을 초래한 것은 시장화, 장마당의 성장입니다.

북한 식 장마당 경제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거의 모든 것입니다. 북한지도부의 시대착오적인 경제의식 때문에 남성들은 가동하지 않는 국가 공장에 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북한 여성들은 장마당 경제를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장마당 주인이 된 여성들은 돈을 잘 벌고 있습니다. 자신의 남편보다 돈을 잘 벌게 된 여성들은 가족생활과 일상생활에서 힘이 많아졌습니다. 경제력은 당연히 영향력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일상생활에서 북한 여성들의 힘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정치영역에서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원래 공산주의운동이 시작했을 때, 초기 공산주의자들은 남녀평등, 여성들의 역할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회주의국가에서 혁명 이후에 여성 정치인들이 많았습니다. 혁명 이후의 러시아도, 2차 대전 이후의 동유럽 나라들도 그렇습니다. 최고지도부에서 여성들의 얼굴이 보이고, 내각의 상과 부상, 대사들 중에서도 여성들이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40-50년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은 박정애인데요. 박정애는 소련 공작원 출신인데, 1930년대 평양에서 지하활동을 했습니다. 당시에 소련군 사령부는 박정애를 아주 높이 평가했습니다. 흥미롭게 얼마 전에 공개된 소련시대 기밀문서에 따르면 당시에 소련은 박정애를 북한 지도자 후보로도 검토했습니다. 물론 잘 아시는 것처럼, 소련은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결정했습니다.

박정애는 나중에 소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1950년대 중반 김일성의 충실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1960년대 말 숙청되었습니다. 또 다른 여성을 들자면 북한 초대 문화선전상 허정숙을 들 수 있는데요. 그녀는 숙청을 당하지 않았고 편안하게 죽었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옛날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북한에서 평범한 여성들은 장마당 덕분에 힘이 많아졌지만, 나라를 움직이는 계층에 들어갈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봅시다. 오늘날 미국 부통령은 누구일까요? 흑인 여성입니다. 독일에서 거의 20년전부터 수상은 여자입니다. 얼마 전까지 영국 수상도 여자였습니다.

당연히 북한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북한에서도 대미 외교를 잘 관리하는 최선희 부상과 같은 여성 고급 간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극소수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에서도 최고 수준의 여성 정치인이 있습니다. 김여정입니다. 리설주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김정은의 가족들입니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왕족들입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평범한 여성들의 힘이 많아졌지만, 정치와 행정 부문에서 여성들의 힘은 세계 기준으로 예외적으로 낮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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