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전 계획재정부장인 박남기가 보름 전쯤 평양에서 총살됐다는 소문이 한국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박남기 부장이 의도적으로 화폐개혁을 실패로 몰고 간 반혁명분자로 몰려 총살당했다는 게 보도의 내용입니다.
저는 박남기가 총살당했다는 소문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자 합니다. 북한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고급 간부가 총살당했다는 소문이 자주 나왔습니다. 때로는 사실이었지만, 근거가 없는 소문도 없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박남기라는 노동당의 고급 간부가 정말 총살을 당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체포되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독재 국가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재자의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독재 국가에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제일 먼저 희생양을 찾아 그에게 모든 책임을 돌려야 합니다. 북한 정권은 이걸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의 경제가 무너진 이유는 시대착오적인 경영구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세력의 책동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199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은 이유는 북한이 중국처럼 농업 분야에서 개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100년 만에 발생한 큰물 때문'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문제가 심각할 경우, 북한 지도부는 고급 간부들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1990년대 말에 서관희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를 총살한 사건은 좋은 사례입니다. 당시에 김정일과 그 측근들은 인민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규모 기근에 대한 책임을 '큰물'과 같은 자연 현상뿐만 아니라 몇몇 고위 간부들에게도 돌렸습니다. 물론 이 간부들은 김일성, 김정일 체제하에서 시키는 대로 활동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이들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 총살했습니다.
북한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구소련에서도 '10월 혁명'을 이끈 공산당 정치국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스탈린 시대에 와서 간첩 혐의를 받고 처형됐습니다. 스탈린의 주장대로라면 공산주의 10월 혁명은 간첩들이 준비한 셈입니다. 북한의 역사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당을 함께 만든 이들 중 간첩 혐의로 숙청당한 인물이 많습니다. 그래서 김일성과 함께 만주에서 활동했던 이들만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만일 박남기 부장이 숙청됐다해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화폐개혁에 실패한 김정일은 희생양이 필요했습니다. 북한 체제하에서는 박남기를 포함한 모든 간부들이 언제든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일개인은 그저 김정일과 그 가족의 독점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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