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4월이 왔습니다. 역사를 보면 4월에 중요한 날들이 많습니다. 4월 15일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며 4월 19일은 이승만 정권의 전복을 초래한 1960년 학생 혁명의 날입니다. 4월 달력을 보고 있으면 김일성과 이승만이라는 두 명의 역사적인 인물과 우리 역사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940년대, 서로를 미워했던 김일성과 이승만은 객관적으로 말하면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둘 다 처음에는 숭고한 이념을 위해 싸웠던 투사였지만 마침내 독재자로 변절됐다는 것입니다.
1910년에서~1920년대까지 이승만은 독립과 나라의 해방을 위해 앞장선 인물이었습니다. 이승만은 독립을 준비하는 임시정부를 만들었고 독립운동에서 최고의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승만은 자유롭고 행복한 조국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반평생을 바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김일성은 이승만과 비슷했습니다. 1930년대 김일성은 북한 당국이 왜곡한 역사 교과서의 주장과 달리 독립투사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당시, 만주에서 일본 침략 세력을 반대하는 투사들 가운데 김일성보다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김일성도 헌신적으로 싸운 독립투사였습니다.
만약, 김일성과 이승만이 1945년 무렵에 죽었더라면 존경 받을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일성도, 이승만도 권력을 잡게 됐습니다. 그들은 권력 앞에서 야심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 학살, 왜곡된 재판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이승만도 한국 전쟁의 비극에 대해서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물론, 동족상잔의 침략을 감행한 사람은 이승만이 아닌 김일성입니다. 그러나 이승만의 주장과 정치 행보를 보면 그도 기회가 있었으면 북침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케 하는 역사적 자료들이 적지 않습니다.
결국, 1960년. 이승만 정권은 학생운동에 의해서 전복됐습니다. 이승만보다 훨씬 더 참혹한 독재정치를 감행한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통치의 결과로 나라의 경제는 무너졌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시작에 남쪽, 북쪽의 지도자였던 두 사람. 이 사람들은 이미 역사가 됐지만, 2010년 현실을 살고 있는 남북의 주민들에게 이 역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4월 달력을 보며 남과 북이 갈라져 걸어온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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