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김정일의 당사업 시작과 세습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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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9일은 김정일이 노동당 당사업을 시작한 날인데요. 당시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이것은 북한에서 세습이 시작된다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세계 역사를 보면 봉건시대에서 세습은 정치의 기본원칙이었습니다. 차기 통치자가 될 사람은 현임 통치자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 김일성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세습은 사회주의 국가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960년대 김일성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바로 후계자 문제입니다. 김일성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 특히 소련의 사례를 보면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1953년까지 스탈린은 신과 같은 숭배를 받았습니다. 당시에 스탈린 개인숭배와 우상화는 1960-1970년대 북한 김일성 우상화만큼 심했습니다. 사실상 김일성과 그 측근들은 소련의 스탈린 숭배를 열심히 모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얼마 후 스탈린의 측근들은 모두 다 스탈린을 배신하고 그의 업적을 부정하며 그의 정책을 열심히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사람 대부분은 이것이 소련 지도자가 된 흐루시초프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당시에 소련 지도부는 모두 다 스탈린 격하에 열심히 참가했습니다. 나중에 몰로토프나 카가노비치와 같이 흐루시초프에 반대하게 될 사람들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본 김일성은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그가 사망한다면, 조금 전까지 김일성을 극찬하던 북한 고급 간부들은 김일성을 열심히 비난하기 시작하고 나라의 모든 문제가 김일성 때문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 중국의 통치자 모택동은 스탈린의 전례를 잘 보았고, 중국군대 최고지휘관 임표를 미리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그런데 임표는 모 주석이 사망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1970년대 초 모택동에 대한 음모를 준비했습니다. 음모는 실패로 끝났고 임표는 해외로 도망가다 죽었습니다.

이들 전례를 본 김일성이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채 죽는다면, 사망 후에 심한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후계자를 미리 지명한다고 해도 그는 배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일 믿을 만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후계자를 지명해야 하지만, 그는 현임 통치자를 공격할 수 없어야 합니다. 유일한 방법은 현임 통치자를 공격한다면 자신의 권력기반이 파괴되는 사람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방법뿐입니다. 즉 가족 특히 아들, 딸입니다.

김일성은 그의 장남 김정일이 나중에 지도자가 되었을 때, 김일성의 유산을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하게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일성은 1960년대 말부터 김정일을 후계자로 교육시키고 결국 1970년대 들어와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당시에 김일성의 결정은 세계적으로 심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김일성의 희망대로 되었습니다. 김정일은 1994년에 권력을 세습했을 때, 김일성의 유산 일부를 포기했지만,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고 김일성의 입장에서 이것은 큰 성공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피폐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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