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북한의 9.9절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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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은 북한의 공화국 창건일 즉 매우 중요한 국가 명절입니다. 1948년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이라는 국가가 창립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역사학자들은 북한 국가의 창립이 모순이 많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한편으로 보면 북한 국가의 창립에 많이 이바지한 세력은 바로 구 소련입니다. 소련은 당시 날마다 심각해지는 냉전상태에서 한반도에 완충지대 그리고 그 완충지대를 통제하는 위성국가를 필요로 했습니다.

당시에 극비로 처리되었던 소련자료들이 이젠 거의 다 공개되어서 이 자료를 연구한 학자들이 많습니다. 북한학자들은 단 한 명도 이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없지만, 러시아와 중국, 독일 그리고 남한 학자들은 역사의 진실을 알고 또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1940년대 말 소련공산당 중앙과 소련군의 자료는 당시에 모스크바가 조선반도 북부를 매우 잘 통제한 것을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이란 국가의 창건일 즉 9월 9일도 소련에 의해서 결정되었습니다. 당시에 소련 최고영도자였던 스탈린은 남한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창립 선언을 한 다음에야 북한국가도 창립 선언을 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이유는 남북분단의 책임을 남쪽에 돌리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1948년 북한의 헌법초안을 스탈린이 직접 교정까지 했습니다. 증거는 러시아 기록보관소에 아주 많습니다. 당시에 소련 당 중앙에서 북한헌법 내용에 대한 논쟁까지 있었습니다. 그 논쟁에 참가한 사람들 가운데 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북한은 그저 소련의 위성국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승만시대 남한에서도 이러한 선전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선전은 매우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스탈린과 소련공산당 그리고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은 김일성과 박헌영을 비롯한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이용할 생각이 있었지만, 김일성과 박헌영도 스탈린과 소련을 자신의 이익에 맞게 이용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48년에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의 압박에 굴복하고 소련이 주장하는 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 정신이 매우 강했습니다. 같은 무렵에 뽈스까와 웽그리아와 같은 동유럽 국가에서 생긴 공산당 정권은 소련의 지지 없이는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동유럽 사람 대부분은 공산당정권을 식민지 정권으로 보고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48년 북한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북한 주민들은 사회주의의 약속을 열심히 믿고 수많은 경우 노동당의 정치 노선을 많이 지지하였습니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소련이 사실상 통치했던 동유럽보다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당시에 어쩔 수 없이 소련과 스탈린을 극찬하고, 모스크바에서 나온 방침을 제대로 실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민족주의 정신이 너무 강했습니다. 그들은 기회만 생기면 독립노선을 시작할 희망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그들의 희망은 조선인민 누구든지 보람 있게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이 입장에서 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은 소련의 승리뿐만 아니라 민족주의경향이 심했던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승리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후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나중의 북한 역사는 소련이나 스탈린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 입장에서 보면 1948년 9월 9일 창건일은 바로 민족주의가 심한 한국 좌익세력의 승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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