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0일은 북한에서 당창건일로 불리는 국가 명절입니다. 북한 관영 언론과 선전 자료들은 이날이 김일성이 조선로동당의 전신인 북조선공산당을 창당한 날이라고 주장합니다. 북한 주민들 중에 이런 주장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북한 주민은 과거에 출판된 책, 신문, 잡지를 읽을 수 없고 지어는 조선로동당 출판사가 과거에 발행한 역사 책도 주민들에게 허용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민들이 이런 출판물을 읽을 수 있다면 1945년 10월에 북조선공산당이 창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으며, 당시에 북한 신문에는 김일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45년 10월에 평양에서 창립된 것은 북조선 공산당이 아니라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입니다. 이날 창립된 것은 지역을 책임지는 당조직, 사실상 도당이었다는 말입니다. 지방조직인 북조선 분국은 서울의 조선공산당에 속해 있었는데요. 당연한 수순으로 북조선분국은 창립하자마자 조선공산당 지도자 박헌영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동시에 세계 공산주의 지도자 스탈린에게도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고 박헌영은 미제 간첩으로 추락했죠.
북조선분국이 ‘북조선공산당’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46년 4월이고, 1946년 8월 북조선 로동당이 공식 창당했을 때에도 초대 지도자는 김두봉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북한에서 김두봉은 미제 간첩은 아니지만 ‘배신자’로 불립니다. 결론적으로 조선공산당을창립한 박헌영은 미제 간첩, 조선로동당 초대 지도자는 배신자인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초대 로동당 지도자들의 명단을 보면 나중에 간첩, 배신자, 종파분자로 숙청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당 중앙 지도원이나 고급 보위원이 아니라면 역사 자료와 옛날 기록들이 금지된 겁니다.
하지만 지도자 이름이 유일한 문제가 아닙니다. 당시 북조선공산당의 자료를 보면 주체사상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습니다. 북한은 김일성이 1930년대 만주에서 무장 활동을 할 때 이미 주체사상을 구상했다고 주장합니다만 ‘주체사상이’라는 단어는 1965년에 처음 등장했고 1970년대 들어와서야 공식화되었습니다.
1945년의 북조선 분국에서도, 1946년의 북조선공산당에서도 중심 사상은 당연히 공산주의와 마르크스 레닌주의였습니다. 북한 공산당은 소련공산당 당 중앙에 의해서 정해진 세계관을 추종했습니다. 당시 북한 언론에는 소련, 특히 스탈린에 대한 극찬이 넘쳐났는데 아마 오늘날 북한 인민들이 이런 글을 읽는다면 극한 사대주의라고 느낄 겁니다.
물론 세계 어디에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정치 단체는, 불가피하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오늘날 미국 민주당이 150년전 미국 민주당과 사뭇 다른 모습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미국이든 영국이든 남한이든 러시아이든, 누구나 자유롭게 옛날 언론과 책을 볼 수 있고 자기 눈으로 직접 역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직 북한에서만 금지돼 있습니다. 북한에서 역사의 진실과 지식은 사상적 독약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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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란코프,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