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역사적 인물이 되어가는 김정일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20-12-17
Share

오늘은 1217일입니다. 2011년 이 날, 바로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벌써 9년이 지났는데요. 김정일은 빠른 속도로 정치인물라기보다 역사인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북한 선전 일꾼들의 웃기는 주장과 달리 김정일은 백두산이 아니라 소련 하바롭스크 근처에 위치한 소련군 기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에 김일성은 소련군 대위였습니다. 김일성은 당시에 소련에서 영원히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아들 이름을 러시아식으로 지었습니다. 유라입니다.

하지만 1945년 소련 정부는 북한에 공산정권을 설치하기로 하고, 김일성을 지도자로 임명했습니다. 처음에 김일성은 소련이 시키는대로 했지만, 곧 소련에서 독립하고 자신이 원하는 북한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일성이 만든 북한의 특징 중에 하나는 바로 정권 세습입니다.

김일성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탈린의 사후 후계자들은 스탈린을 마구 비난하고, 그를 격하했습니다. 중국에서 모택동이 임명한 후계자는 불과 몇 년 후에 쿠데타를 계획했습니다. 이것을 감안하면, 독재자가 자신의 유산과 명예, 정권을 지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세습입니다.

그래서 김정일은 북한의 두 번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김정일이 정권을 승계한 후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만 명이 아사하고, 나라는 거의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김정일이 사악하고 악독하며 사치와 호화생활을 즐기는 미친 독재자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김정일은 어떤 사람일까요? 김정일의 개인 성격은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의 최고지도자에 별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김일성이 계속 소련에서 살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소련에서 태어난 김정일 아니 유라 킴은 정치 대신에 예술을 공부하고, 탁월한 영화감독이 되어서 좋은 영화를 여러 편 촬영했을 것입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아버지의 정치 논리 그리고 자신의 야심에 따라 정권을 승계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엽은 북한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김일성시대 북한은 사실 소련과 중국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배급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초 세계는 바뀌었고, 소련과 중국은 대북지원을 사실상 중단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의 경제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김정일의 기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체제 유지입니다. 김정일은 처음부터 자신의 기본 원칙을 잘 표시했는데요. 그는 나에게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물론 김정일시대 북한사회는 아주 많이 바뀌었습니다. 시장화입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아래에서 생긴 일입니다. 정치와 사상 부문에서 김정일은 자신의 약속처럼, 아무 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치와 사상을 개혁한다면 인민들은 로동당과 정치체제에 의심이 생기고, 반체제 봉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은 체제를 지켰고, 북한 집권 계층은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체제유지를 위해서 경제난과 대기근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마 김정일은 인민들의 고생을 환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체제유지는 평민 백성들을 구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수십년 후의 역사학자들은 김정일을 어떻게 평가할 지 알 수 없지만, 거의 확실히 그를 나쁘게 평가할 것입니다. 김정일은 좋은 예술적 재능도 있고, 독재정치의 재능도 아주 많은 비극적인 인물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