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4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을 전격 방문한 것이 내외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중국의 인민일보는 김 위원장이 군부와 당, 외교부 수뇌들을 이끌고 중국대사관을 방문, 류샤오밍 대사를 비롯한 중국대사관 직원들과 중국의 명절 원소절을 축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중국 대사관 방문은 지난 2000년과 2001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인 셈입니다.
이번 김정일의 방문은 최근 베이징에서 이뤄진 2.13합의를 계기로 미북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되고 국제적 고립과 거센 압력을 초래했던 핵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중국이 보여준 역할에 대해 고마움을 크게 표시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이번 방문을 계기로 작년 10월의 핵실험이후 냉랭해진 북중관계를 복원하고 전통적인 동반자 관계를 다지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아울러 북한이 그동안 중국으로부터 받아온 식량과 에너지 지원을 계속 확보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번 방문은 큰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국가 원수가 자국소재 외국 공관을 방문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국가 원수 혼자가 아니라 군부와 당, 외교부 실세들을 떼거리로 대동하고 방문한 것은 특이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외교관계에서 대사가 주재국 국가원수를 따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신임장을 제정할 때 정도입니다. 그것도 국가 원수 집무실에서 이뤄집니다. 대사의 상대는 주재국 외교부 관리 중에서 정해집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 북한의 외교부장관 대행격인 강석주 제1부상은 이날 김 위원장과 중국 대사 만남의 들러리였습니다. 참으로 외교관례상 찾아보기 힘든 해괴한 모습이 연출된 것입니다.
중국은 몇 년새 북한 무산철광을 비롯, 용등 무연탄광, 혜산 구리광산 등의 채굴권을 확보하는 한편 나진항 부두 50년 독점사용권을 따냈습니다. 그 결과 지금 북한이 중국의 동북 3성에 이은 제4성 신세가 돼 간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의 중국 대사관 방문은 친중 사대주의의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를 구호로 제시해 왔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외교에서의 자주라는 명분을 앞세워 비동맹국가들을 선동해 오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남한의 대미외교를 자주노선을 포기한 친미 사대주의라고 비난까지 해왔습니다. 그러한 북한의 최고 통치자가 중국대사의 부름을 받고 대사관으로 떼거리로 달려갔다니 이것을 어떻게 \x{ff62}주체의 나라\x{ff63}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 당국은 걸핏하면 민족자존을 외치는데 이제는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