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친서’ 거부한 북한 속내는?

앵커: 미국 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에게 보낸 친서의 수령을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전문가들은 북한의 의도가 몸값을 올리고 미국으로부터 단계적 핵동결이나 핵군축 등 이른바 스몰딜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인 ‘NK뉴스’는 현지시간으로 11일 미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외교관들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총비서에게 보내는 친서의 수령을 거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매체에 따르면 고위급 소식통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화 재개를 목표로 김 총비서에게 보낼 친서를 작성했지만, 친서를 전하려는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북한 외교관들이 수령을 거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뉴욕의 북한 외교관이란 소위 뉴욕채널로 불리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12일 김 총비서가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 “나와 북한은 언제나 당신과 러시아 연방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김 총비서는 축전에서 “북러 친선관계는 피로써 맺어진 두 나라 장병들의 전투적 우애로 더욱 굳건해졌다”고 밝혔고 러시아를 “형제국가”라고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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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를 읽고 있는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를 읽고 있는 모습. (연합)

북한이 러시아와는 활발한 소통을 지속하는 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 수령은 거부하는 배경과 관련해 탈북민 출신 김성렬 부산외대 교수는 12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북한이 러우전쟁 이후 발전된 러시아와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최대한 활용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에 대해서는 조급하게 나서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김성렬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어떠한 협상을 진행할 것인지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와야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김 교수는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완전 비핵화’가 아닌 단계적 핵군축이나 핵동결에 초점을 맞춘 이른바 ‘스몰딜’ 제안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성렬 부산외대 교수] 스몰딜 로드맵이 나와야 북한이 움직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조급하지 않고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본인들도 거기에 대한 반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12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이 부분적 핵폐기 또는 핵 동결이라는 요구 조건을 미국이 수용하도록 만들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습니다.

오 연구위원은 또 북한이 러시아에 대해서는 군사동맹으로의 진화 등 전략적 밀착을 지속하고, 이를 통해 미국에 대항하며 자신들이 놓인 상황을 바꾸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지금 북한이 친서를 거부하는 목적은 자신들의 몸값을 올리기 위한 목적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겠죠. 김정은이 반응할 수 있는 조건은 하노이 미북협상에서 김정은이 요구했던 사항을 트럼프 행정부가 받아들였을 때 그런 조건에서나 아마 협상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완전 비핵화’가 아닌 이른바 스몰딜을 북한에 제시할 가능성과 관련해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12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상황은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트럼프 1기 정부 때보다는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부르며 비공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점, 1기 정부와 달리 2기 정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반대할 만한 관료들이 많지 않다는 점 등이 그 가능성을 높인다는 설명입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 북한 입장에서는 북미대화 재개에 신중한 입장이라는 것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봐야 되겠습니다만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라고 부르고 백악관 안에 노(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고 충성파만 있는 것을 고려해 보면 스몰딜을 미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트럼프 1기 정부 시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총비서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에도 친서를 주고 받는 등 30건 가까운 친서를 교환한 바 있습니다.

국립외교원은 지난해 12월 발간한 ‘2025 국제정세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미북 정상 간 회동은 어렵겠지만 ‘친서 외교’는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도형입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