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해외 노동자, 타국 노동자 영상통화에 “왜 우린 못 하나?”

“러시아 노동자가 ‘북한은 끔찍한 곳’, ‘한국은 잘 사는 나라’라고 얘기해 북한 노동자가 충격을 받았다.”

“다른 노동자들이 스마트폰으로 가족과 영상통화 하는 모습을 보고 북한 노동자가 ‘왜 우린 못 하냐’라고 비교하게 됐다”

“북 해외 노동자, 외부 정보와 문화에 충격”

이처럼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현지에서 접한 외부 환경과 정보 등으로 적지 않은 충격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허탈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조지 W. 부시 센터가 공동으로 ‘러시아의 무인기 생산 기지에 투입된 북한 노동자’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한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해외 북한 노동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외부 정보를 접하며 북한 사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겪는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의 북한인권단체 ‘링크’(LiNK)의 박석길 전략총괄은 이날 러시아의 한 건설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가 러시아 노동자로부터 ‘북한은 끔찍하지만, 한국은 잘 사는 나라’라고 말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또 그는 중앙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이 종종 스마트폰으로 가족과 영상통화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북한 노동자들이 ‘왜 우린 못 하냐’라고 느낀다고 전했다. 북한 노동자 입장에서 ‘그들이 나보다 더 나은 일꾼도 아닌데,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당연한 듯 더 나은 조건을 누리는가’에 대한 허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박석길] 북한 노동자들은 중앙아시아 등에서 온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고향에 영상통화 하는 걸 봅니다. 요즘 이주노동자들은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아내, 아이들과 통화를 하죠. 북한 노동자들은 이걸 보면서, 말이 좀 거칠지만, ‘젠장, 왜 우린 저걸 못 해?’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직장에서 북한 노동자보다 아래일 수도 있고, 같은 위치일 수도 있습니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죠. 북한 노동자들은 스스로 더 나은 일꾼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 더 나은 조건을 누리는 걸 보게 됩니다.

중국 지린성 훈춘시의 한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기숙사로 걸어가고 있다.
North-Korean-workers-aborad-2 중국 지린성 훈춘시의 한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기숙사로 걸어가고 있다. (Ng Han Guan/RFA)

일반적으로 북한 해외 노동자들은 한 곳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철저한 감시 아래 사생활을 통제받는다. 이는 외부 정보의 접근을 차단한다는 노림수도 있다.

하지만 건설 현장이나 공장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한국에 관한 정보를 듣거나, 북한 노동자가 누릴 수 없는 자유를 목격하면서 인식의 혼란을 겪는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특히 북한이 해외 노동자를 파견하고 이들 수입의 70~90%를 착취하는 건 명백한 ‘국가 주도형 인신매매’이지만, 이들이 해외에서 접하고 경험하는 정보와 문화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전문가들 “대북 방송∙인권 프로그램 예산 보장해야”

올리비아 에노스 미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해외에서 정보를 접한 노동자는 북한에 남아 내부 변화를 도모할지, 자유를 찾아 떠날지를 선택하는 주체성을 갖게 된다고 말했고,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를 지낸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북한 정권을 생각하면 해외 노동자 파견을 막아야 하지만, 정보 유입을 고려한다면 더 많은 북한 노동자를 해외로 내보내야 하는 이중의 역설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보고서에 언급된 러시아 타타르스탄 공화국 옐라부가 인근 알라부가 경제특구도 도심에서 먼 외진 곳이라 북한 입장에서 인력을 격리∙관리하기 좋은 곳이지만, 이곳의 북한 노동자도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외부 사정을 알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이런 가운데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는 해외 노동자를 통한 정보 유입도 의미가 있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며 정보 전달을 위한 다른 수단으로서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에 대한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차 석좌는 탈북한 사람의 거의 100%가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며, 그사이에는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닌 인과관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빅터 차] 북한 노동자들이 알라부가나 다른 곳, 심지어 쿠르스크 전선에서 싸울 때도 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북한 사람들이 정보를 모아 국내로 가지고 들어가는 하나의 방법이죠. 다만, 대가가 너무 큽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관계, 드론, 전투를 부추긴다는 점에서요. 결국, ‘드론을 만드는 게 대가’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북한 주민에게 정보를 전달할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링크(LiNK), 부시 연구소 같은 곳의 활동에 대한 지원, 북한인권법 재승인, 예산 배정, 그리고 정보 전달을 위한 RFA, VOA 등에 대한 의회 예산이 필요합니다.

14일 미국 워싱턴 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북한 인권과 러시아 축(North Korean Human Rights and the Russia Axis)’ 세미나 패널 토론 모습. (왼쪽부터) 올리비아 에노스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 조셉 김 부시 연구소 글로벌 정책 프로그램 매니저,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박석길 링크(LiNK) 전략총괄.
CSIS와 조지 W. 부시 연구소 주최로 열린 북한 인권 및 러·북 협력 세미나 패널 토론 현장. 14일 미국 워싱턴 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북한 인권과 러시아 축(North Korean Human Rights and the Russia Axis)’ 세미나 패널 토론 모습. (왼쪽부터) 올리비아 에노스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 조셉 김 부시 연구소 글로벌 정책 프로그램 매니저,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박석길 링크(LiNK) 전략총괄. (CSIS 유튜브 캡처)

또 참석한 전문가들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의 비용은 적지만, 그 효과는 크다며 자유아시아방송, 미국의 소리 방송과 함께 북한 인권 프로그램의 예산을 보장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한편, 탈북민 출신의 조셉 김 부시 센터 글로벌 정책 프로그램 매니저는 중미에서 북미 지역까지 3~4세대에 걸려 8천 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하는 제왕나비를 언급하면서, 북한 인권 활동에 당장의 열매가 없더라도 꾸준히 이어가야 하며, 탈북민 자신도 피해자의 서사를 넘어 변화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해 현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