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돕기 위해 취재를 바탕으로 가상의 인물을 설정한 사례입니다.
북한 평안남도의 한 국영 식료 공장에 다니는 40대 노동자 김 모 씨의 손에 쥐어진 지난달 공식 월급(노임)은 북한 돈으로 2만 원(미화 약 30센트, 한화 약 400원)이다. 명목상 책정된 월급은 5만 원이었지만, 국가대상건설 지원금, 교육 지원금, 농촌 지원 물자 구입비 등 ‘사회지원’ 명목으로 3만 원을 먼저 떼였다.
그마저도 원료가 제때 들어와 기계가 멈추지 않은 덕에 받은 돈이다. 설비가 멈춘 일부 공장 노동자들은 생산물이 없어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처럼 공장마다 업종과 생산 실적이 다르다 보니 노동자들의 임금도 천차만별이다. 경영이 잘 되고, 수입이 좋은 공장 노동자는 더 많은 월급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기본 월급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미화 1달러당 북한 돈 7만 4천 원~7만 8천 원인 시장 환율로 환산하면 김 씨가 한 달 동안 공장에 출근해 받은 돈은 미화 30센트도 안 된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2만 원의 월급으로는 현재 1kg에 4만 원이 넘는 입쌀은커녕, 2만 5천 원이나 하는 옥수수 1kg도 살 수 없다.
RFA는 최근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10월 북한 내부 물가와 임금 자료를 바탕으로 공장 노동자 김 씨와 아내 이 씨, 중학생과 소학생 자녀 등 가상의 4인 가족 한 달 살림을 가계부 형태로 구성했다. 소식통이 전한 물가는 평안남북도와 황해남북도, 강원도 지역을 기준으로 했다.

학교 과제비 내면서부터 ‘마이너스’ 시작
김 씨 가정의 가계부는 매달 적자로 시작한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둘이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파지와 파고철 과제를 요구한다. 이를 물품 대신 현금으로 하려면 학생 1인당 매달 3만 원 안팎의 돈을 내야 하는데, 두 자녀 몫으로 매달 6만 원이 들어간다. 김 씨가 공장에서 받은 2만 원을 고스란히 보태도 4만 원이 모자란다.
또 전기와 수도는 공급이 정상적이지 않음에도 매달 5천 원 정도를 걷어간다. 이를 합치면 밥 한 숟갈 뜨기도 전에 4만 5천 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일부 공장에서는 출근자 본인에게만 옥수수 5~10kg을 추가로 공급한다고 하는데, 함경북도에서는 쌀이나 부식을 현물로 얹어주던 것도 완전히 끊겼다. 이것도 지역과 공장, 기업소에 따라 사정이 다른 셈이다.
옥수수만 먹어도 165만 원 적자... 쌀밥은 ‘언감생심’
김 씨 가족이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한 달을 버티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북한 당국이 규정한 1인당 하루 식량 기준(노동자 750g, 주부 550g, 학생 450g)에 따르면 김 씨네 4인 가족에 필요한 한 달 식량(세끼 기준)은 약 66kg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10월 현재 평안도 일대에서 거래되는 입쌀 가격은 1kg당 약 4만 원, 옥수수는 2만 5천 원 선이다. 함경북도와 양강도 지역은 이미 입쌀 1kg이 5만 원을 넘었다.
만약 온 가족이 흰쌀밥을 먹는다면 식량값만 264만 원이 든다. 김 씨의 명목상 월급인 5만 원으로 따져도 무려 52달 치에 달한다. 쌀밥을 포기하고 옥수수로만 끼니를 때우려 해도 식량값은 165만 원으로, 한 달 월급의 33배에 이른다.

북한 내부 협조자들을 통해 임금과 물가를 조사해 온 일본 언론매체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지금 북한 노동자의 월급으로 쌀은 꿈도 못 꾸고, 옥수수 중심으로 겨우 사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시마루 지로] 국영기업에서 근무하는 경우 급수와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한 달에 국가가 제공하는 노임은 3만 5천 원부터 10만 원 사이에요. 경영이 괜찮은 국영기업에서 두 배를 받아 (월급이) 20만 원이라고 해도, 지금 그거 가지고 백미 5kg도 구입을 못 합니다. 그런데 배급이라는 게 없잖아요. 그런 노임을 가지고 옥수수 중심으로 해서 겨우 사는 정도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찬까지 제대로 갖춰 먹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돼지고기는 1kg에 27만 원으로 김 씨 월급의 5배가 넘고, 동태는 1kg에 10만 원, 달걀은 한 알에 1만 원, 생수는 1리터에 5천~1만 원, 러시아산 식용유는 10리터짜리 한 통에 20만~25만 원 선이다. 이것도 품질과 지역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김 씨가 받는 2만 원 월급으로는 모두가 그림의 떡이다.
여기에 기본적인 생필품, 조미료 등 기초 식량, 교통비 등 추가 비용까지 고려하니, 점점 더 커지는 적자에 머리가 다 아플 정도다. 제발 예상치 못한 돈이 들어갈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족을 먹이는 건 월급 아닌 ‘일공’과 부업
결국, 김 씨네 가계부의 구멍을 메우는 것은 비공식 노동이다.
김 씨의 아내 이 씨는 단속이 심한 장마당 장사를 접고, 남의 짐을 대신 날라 주거나 건설장 일을 거들고 일당을 받는 ‘일공’에 나선다. 소식통에 따르면 하루 일당은 보통 10만 원, 많게는 20만 원이다. 남편이 공장에서 한 달 내내 일해 받는 월급의 두 배를 하루 품삯으로 버는 셈이다.
이것도 일감이 매일 있는 게 아니어서, 이 씨가 한 달의 절반인 15일을 일했을 경우 그가 버는 150만 원으로 적자를 메워도 한 달에 필요한 옥수수값 165만 원에 미치지 못한다.
이시마루 대표는 국영기업에서 주는 공식 노임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 가내 수공업이나 부업 등에 의존하는 북한 주민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노임만 가지고는 모자라니까, 지금 우리 협조자 모든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가발이라든지 속눈썹이라든지 그런 위탁가공, 그러니까 집에서 가공하는 하나의 부업이죠. 그걸로 수입을 얻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2023년 10월, 북한 당국이 국영기업 노동자, 사무원, 공무원 등의 법정 월급을 최소 10배에서 20배 이상 대폭 인상했을 때는 대다수 북한 주민이 반겼다. 그래도 삼시세끼 잘 먹고 기본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컸지만, 불과 3~4년 만에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민생 경제를 강타했다.
RFA 소식통은 대부분 노동자가 월급을 생계 수단으로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국가가 정한 월급과 개인 일공 제도의 격차가 심하다고 전하고, 북한이 ‘겉모습은 사회주의지만, 내용은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 같은 사회’라고 꼬집었다.
더 큰 위기: 닥쳐온 겨울... 석탄 1톤에 90만 원
11월에 접어들면서 김 씨네 가계부에 닥칠 더 큰 위기는 지금부터다. 난방용 석탄 가격이 1톤당 80만~90만 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2020년만 해도 톤당 15만~20만 원 수준이던 석탄 가격이 4배 이상 뛰었다.
북한에서 4인 가구가 겨울을 나려면 보통 1~1.5톤의 석탄이 필요하다. 정말 따뜻한 겨울을 나려면 3톤 이상은 장만해야 하는데, 최소한의 난방만 하기로 했다. 진작에 지난 여름부터 겨울 땔감을 준비해야 했는데, 매달 적자에 입에 풀칠조차 어려운 김 씨에게는 여유가 너무 없었다.

또 북한에서 김장은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먹는 ‘반년 식량’으로 불린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장용 배추는 1kg에 9천~1만 원, 무는 7천~8천 원이다. 4인 가족이 반년을 먹으려면 배추만 약 300kg이 필요하지만, 김 씨네는 배추 30kg과 무 10kg만 양념 없이 담그기로 했다. 그래도 최소 34만 원이 든다. 그만큼 김 씨네 적자는 더 불어나게 된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서 4인 가구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려면 미화로 월 80~100달러(북한 돈 약 590만~780만 원)가 필요하지만, 일반 주민은 그 절반 액수로 살아가는 실정이다. 이 씨가 한 달 내내 일공과 부업을 해 300만 원을 벌어도 그 절반에 겨우 닿는 셈이다.
도저히 계산이 되지 않아 RFA 취재진은 이시마루 대표에게 “이렇게 매달 적자인데, 북한 주민이 도대체 어떻게 사는 거냐?”고 물었다.
[이시마루 지로] 정말 궁금해요. 정말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지방 도시 주민들은 정말 어렵게 삽니다. 차라리 2019년 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해 전쟁 특수가 생긴 이전, 개인 경제 활동이 가능했을 때가 훨씬 생활의 여유가 있었다고 다들 평가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추수가 끝나는 오는 12월부터 곡물 가격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게 소식통의 전망이다. 김 씨는 12월에도 공장에 출근해 2만 원을 받게 된다. 4인 가족의 적자 가계부를 메우려면 아내 이 씨는 12월에도 하루 10만 원짜리 품을 보름 넘게 팔아야 한다.
에디터 노정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