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의 아버지 북한에서 환갑

지난 1987년 1월 15일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된 남한어선 동진호의 선원 최종석씨가 지난 26일 북한에서 환갑을 맞았습니다.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의 아버지인 최종석씨는 19년 전 백령도 인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동료 선원 11명과 같이 북한당국으로부터 간첩의 누명을 쓰고 북한에 억류돼 있습니다. 이규상 기자가 최우영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최근에 신문 광고 면을 통해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아버지의 송환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고 또 임진각 소나무에 노란 손수건 400장을 달아서 최우영씨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알리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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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10월 26일이 사랑하는 아버지의 환갑이었다. 내가 고1때 아버지가 납북되었는데 환갑이 되도록 아버지를 모셔오지 못할지는 몰랐다. 자식 된 도리로 불효된 마음을 가눌 수 없었고 그런 심정으로 김정일 위원장에 보내는 편지를 일간지 광고에 내게 됐다. 국내에서 많은 언론들이 편이 되어 주고 가족처럼 대해줬다.

만약 아버지가 오시게 되면 38선을 건너서 오실 텐데 그동안 우리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아버지를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 아버지가 오시는 길목에 노란 손수건을 달게 됐다.

최우영씨 아버지에 대한 최근 근황에 대해서는 들은바 있습니까?

최: 얼마 전 정부관계자를 통해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상황에서 정부가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발표했을 때 피눈물이 났다. 나는 10년 20년 동안 아버지를 기다릴 수 있지만.. 그 절박한 심정에 호소를 하게 된 것이다.

그 밖에 정부 관리로부터 어떤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까?

최: 아버지가 결혼을 안 하시고 남한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최우영씨도 그렇겠지만 최우영씨 어머니도 아버지를 그리는 슬픔이 적지 않을 텐데. 두 분이서 아버지에 대해 많이 말씀을 나누십니까?

최: 사실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를 얘기는 슬픔이고 비극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런 얘기를 차마 못하신다. 저 또한 어머니가 우울해 하실까봐 아버지 얘기를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버지에 대한 갈망이 그 누고보다도 묻혀있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납북자 가족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지만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돌아오시리라는 희망을 버리신 것은 아니죠?

최: 우리는 희망이 없이는 이 운동을 할 수가 없다. 남들은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북한에 계신 아버지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하는 것은 보잘 것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울림이 느껴지지 않겠지만 아버지는 제 아버지이기 때문에 딸이 호소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우영씨는 또 다른 납북자 가족들을 대표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셨는데요. 어떻게 이런 힘든 일을 맡게 됐습니까?

최: 나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인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알기에 납북자 가족들의 슬픔을 이해하게 되고 그런 일들이 남의 일같이 않았다. 그래서 가족들을 위해 신경을 섰다. 사실은 내가 가족들을 담기엔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다른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분들이 많이 나오셔서 가족을 잃은 아픔을 이해하며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