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리포트] 발트 3국의 박물관과 기념물들

발트 3국, 즉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구소련 15개 공화국중의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영향을 벗어나서 모두 EU에 가입하였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 공산주의 시절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후세에 교훈을 삼기 위하여, 이들 나라들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공산주의 시절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박물관과 기념물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의 구시가지에 가면 점령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러시아 혁명 때 볼셰비키 군대를 지원한 군인을 상징하는, 붉은 소총병 동상 뒤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소련과 나찌 독일이 라트비아라는 국가를 점령하고 있는 동안 저지른 만행을 고발하기 위하여 만든 곳입니다.

원래 라트비아는 독립국이었었는데, 소련의 스탈린이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와 같은 다른 발트해 국가들과 같이 강제로 소련에 합병해서 15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구 소련을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처음에는 소련이 라트비아를 점령했었지만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소련군이 라트비아에서 물러가고, 나찌 독일 군대가 들어와서 이 땅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해방군으로서 환영을 받았으나, 후에는 여느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처럼 많은 유태인들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서 학살했습니다. 라트비아에서 나찌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 박물관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나찌가 망해서 물러간 후에는 다시 소련이 이 땅을 다스리게 되었고, 대대적인 소비에트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소련 통치기간동안 KGB와 같은 비밀경찰이 많은 라트비아 사람들을 정치, 종교, 이념적인 이유로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이고 했던 것을 이 박물관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남북한이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시절을 연상하게 할 만큼 전시실이 꾸며져 있습니다.

또한 이 박물관은 소련 통치 당시 라트비아에서 끝까지 소련 당국과 맞서 싸웠던 라트비아 비밀 조직들의 활동 모습과, 해외로 망명하야 라트비아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의 모습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을 보며 한국처럼 식민 통치의 경험이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많은 공감이 이루어 졌고, 독립을 위한 그들의 끈질긴 노력에 존경을 표하게 되었습니다.

리가의 구 시가지를 벗어난 동쪽 공원에는 자유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1935년에 세워졌으며, 라트비아의 3 지역을 뜻하는 3개의 별을 가지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소련 시대 때 이 기념비는 출입금지 지역이었고, 오히려 레닌 동상이 반대편이 세워졌었습니다. 하지만 1987년에는 스탈린이 라트비아인들을 시베리아로 강제 추방한 것을 추모하기 위한 집회가 자유의 기념비 앞에서 열리게 되었고, 이후에 레닌 동상은 1991년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뒤 철거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자유의 기념비는 라트비아 독립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이도시의 신시가지에는, 이전에 레닌 동상이 있었고, 그 동상의 이름을 딴 레닌 광장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광장의 동상은 철거되었고 광장의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이 광장의 맞은편에는 나찌 독일 때는 게슈타포의 본부였으며, 소련 시대에는 리투아니아 KGB 건물로 사용된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의 한쪽 부분은 대량 학살 희생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에 근무하는 많은 분들은, 이전에 감옥에 수감되었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박물관내부에는 그들이 고문을 받았던 감방과 처형당했던 감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감방에는 그들이 흘린 피의 흔적이 벽에 얼룩지어져 있습니다. 또한 다른 방에는 이 도시의 공원에서 발견된 유골들이 있는데, 그들은 소련 때에 KGB가 대량 학살 하고나서 공원에 몰래 파묻은 사람들입니다. 1994년 이 공원에서는 706구의 시신을 담고 있는 비밀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조사결과 이 시신들은 소련 통치에 저항하여 무장 투쟁을 벌였던 리투아니아 빨치산들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944년에서 47년 동안 KGB는 그들을 현재의 박물관 건물에서 총살하고 이 비밀 무덤에 파묻은 것입니다. 당시 리투아니아 빨치산들은 40,000명으로 추정되었고, 그들은 빌뉴스에서 북쪽으로 75km떨어진 숲에서 활동을 했었습니다.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붙잡힌 사람들은 곧바로 재판을 거쳐서 유죄판결을 받게 되고, 빌뉴스에 있는 KGB 감옥에 가서,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채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죄수들은 알파벳 A, B등과 같이 불려졌기 때문에, 서로가 누군가를 아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만일 서로 대화를 나누려고 했을 경우에는, 독방에 보내져서 속옷이 벗겨진 채로, 하루에 300g의 빵과 1리터의 물만을 먹으면서 보내야 했습니다.

심문동안 KGB와 대화하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악명 높은 다른 감방으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은 일명 “부드러운 감방”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고문받는 사람들의 비명을 잠재우고 그들을 때리는 소리를 들리지 않게 하려고, 부드러운 방음시설을 잘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때로 죄수들은 그들이 미칠 정도로 캄캄하고 조용한 방에 갇혀있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심문실은 차가운 바닥이 차가운 물로 채워진 곳인데, 겨울에는 심지어 얼음으로 바뀌기까지 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심문실은 KGB 건물 안에 두 곳이 있었는데, 감옥 도서관 밑바닥에 위장된 채로 숨겨져 있었습니다. 심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시베리아의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져서 거기서 심한 감시 속에 수년 동안 중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이후에 그들은 도망가지 않겠다는 선서를 한 후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고 정기적으로 간수들에게 자신의 활동을 보고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제정 러시아 시절 러시아 황제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냈던 죄수들의 처지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빌뉴스 시내에는 이 박물관 이외에도 소련군이 1991년에 리투아니아에 무력을 사용하여 쳐들어왔을 때를 상기시키는 건물들이 한 곳 더 있습니다. 우선 텔레비전 타워를 들 수 있는데, 이 텔레비전 타워는 방송국을 지키려다 러시아 특수부대에 의해 죽은 12명과 부상당한 많은 사람들을 상기시키는 장소입니다. 지금 그곳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나무 십자가와 양초가 세워져 있고, 매년 1월 13일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을 추모하며 촛불 의식을 가집니다. 또한 이 타워 내부에는 그때당시를 기억시키는 물품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저는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의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과거 공산주의 잔혹함과 어두운 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국민들이 모두 과거의 어두운 면을 빛으로 드러내어, 후세에 교훈으로 삼는다는 것이 제게는 큰 인상을 심어주었으며, 더 이상 지구상에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