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통신] 김수환 추기경 선종

2월 16일 오후 6시 12분.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한국 사회는 시대의 큰 어른, 천주교의 큰 별이 타계했다는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이수경 xallsl@rfa.org
2009.02.15
stephan kim 0 305 명동성당 대성전 안에 안치되어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RFA PHOTO/이수경
평양교구장 서리로 봉직하면서 늘 북녘의 교회를 위해 기도했던 김 추기경은 생전에 평양을 꼭 한번 방문하길 원했으나 결국 그 소원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에 나가봤습니다.

서울 명동성당 본관 대성전에는 고 김 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성당 입구부터 시작된 조문 행렬은 1km 가 넘게 줄을 섰지만 추모객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만 갑니다.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온 젊은 어머니부터 검은색 정장 차림의 노신사까지 추모객들은 종교와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하나가 되어 고인의 뜻을 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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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기 위해 명당성당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조문 행렬 - RFA PHOTO/이수경
RFA PHOTO/이수경


추모객 1: 생전에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여기서 통곡하면 안되니까 가슴으로 울고 있습니다.

추모객 2: 우리 큰 별이 떠나시고 누우시면서도 빛을 발하시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도 빛이 되셔서 이 나라를 비춰주시기 바랍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은 명동성당 대성전 안에 있는 부패를 막는 유리관 속에 안치돼 있었습니다. 고이 잠든 고 김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기도를 하고 나오는 추모객들 가운데는 북받치는 슬픔에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었습니다.

추모객 3: 너무 답답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마음이 착잡했고 돌아 가셔서 너무 애통합니다.

명동성당 뒷마당에 마련된 촛불 앞에서 기도를 하던 어느 신학생은 고인의 발자취를 따라 가리라 다짐합니다.

신학생: 저희 마음의 등불이시던 분이 선종하셨습니다. 오늘 여기 온 것을 통해 다시 제 마음의 거울을 다시 깨끗하게 닦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처럼 종교와 계층을 초월해 나라 전체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는 고인이 생전에 보여준 사랑과 희생 정신 때문입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40여년 전, 서울대교구장이 된 데 이어 1969년 한국 교회 최초이자 동양 교회 최초로 추기경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한 평생을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준 사랑의 목자였습니다.

소외된 이들에 대한 고 김 추기경의 관심과 사랑은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탈북자와 이주 노동자, 장애인, 미혼모, 에이즈 환자까지 확대되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사회봉사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지난 1970-80년대 암울한 독재정권 시대 때는 한국 사회에 인권과 정의를 일깨우고 민주화의 횃불을 밝히는 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특히 고 김 수환 추기경은 평양교구장으로 봉직하면서 민족화해와 북한에 대해 보인 관심도 컸습니다.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를 맡고 있는 황인국 몬시뇰은 고 김 추기경은 늘 북녘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고 생전에 평양에 방문하길 원했지만 이루지 못해 안타까와 하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분은 평양 교구장 서리로써 하실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특별히 교황청을 통해서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 하셨습니다. 하지만 평양 방문을 한번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됐습니다. 앞으로 평양에 돌아갈 수 있는 그 날을 위해서 준비를 하라고 저에게 대리 일까지 맡기셨습니다. 북한 교회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저희 나름대로 노력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발 벗고 나설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북한에 활발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울대교구 소속의 민족화해위원회 역시 고 김 추기경이 아니면 설립이 어려웠습니다. 1990년대 중반. 당시 홍수과 가뭄으로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돕자는 제안에 교회 일각에서는 식량을 들고 북한에 가면 총을 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경직돼 있었습니다. 이에 고 김 추기경은 식량을 갖고 들어가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좀 약해지지 않겠느냐라고 답변하며 천주교회의 대북 식량 지원을 결단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황인국 몬시뇰은 가까이서 지켜 본 고 김수환 추기경은 내면과 외면이 항상 같은 진실한 분이였다고 말하고 하늘 나라에서도 남북한의 교회를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으실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제가 가까이 모신 적이 있습니다. 사무처장 신부로 김수환 추기경 바로 밑에서 일을 했습니다. 인품이나 신앙적인 면에서 여러 가지로 너무 존경하고 있는 분입니다. 어느 누구보다 김수환 추기경을 존경해 왔습니다. 나라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하셨지만 한국 교회를 위해서 큰 일을 하신 거목이십니다. 이렇게 돌아가시고 나니까 허전한 마음 금할 길이 없고 앞으로 하늘 나라에 가서도 한국 교회와 특별히 평양 교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나신 고 김수환 추기경. 고인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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