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다시보기-6.24.08]적군묘지-죽어서도 돌아가지 못하는자들

6.25 한국전쟁은 휴전으로 끝났으니,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아직도 진행 중인 전쟁입니다. 이런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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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가 바로 그곳입니다. 죽어서도 버림받은 북한 사람들이 묻힌 곳. 탈북자들을 눈물 흘리게 만든 이곳을 박성우 기자가 탈북자 언론인 김태산씨 그리고 김춘애씨와 함께 동행 취재했습니다.

서울 광화문에서 '자유로'를 타고 자동차로 1시간 반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 56번지 인적이 드문 길가입니다.

원래는 야산이었는데, 이젠 4차선 도로가 뚤려 있고 멀리 농가 몇채가 보입니다.

기자

: 적군묘지 보여요?

김태산

: 네.

따로 난 길이 없기 때문에 소위 '적군묘지'로 알려진 이곳에 가려면 풀로 뒤덮힌 오르막을 조금 올라가야합니다.

기자

: 풀이 많이 자랐구나.

기자

: 여기 '북한군/중국군 묘지 제1묘역' 이렇게 돼 있죠.

김태산

: 아... 158구. 96년 7월에 만든 걸로 돼 있군요.

밭으로 둘러싸인 적군묘지 제1묘역 아래에는 '군사시설이니 출입을 통제한다'는 경고판이 설치돼 있습니다.

경고판 맞은 편에는 작은 헬기 착륙장이 있고, 왼쪽으로 50여미터 옆에는 2000년 6월에 새로 만든 제2묘역이 있습니다.

이곳 두 묘역에는 전쟁 중 사망한 북한군 352구, 중공군 84구. 이렇게 합해서 총 436구가 묻혀 있습니다. 그 중에는 작년에 발굴해 지난 4월17일에 새로 묻은 북한군 122구, 중공군 34구의 유해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밖에도 이곳 적군묘지엔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남쪽에 침투했다 사망한 북한요원들의 시신도 있습니다.

기자

: 저기 앞에 보세요. 1.21사태 무장공비... 앞부분은 전부 다에요. 앞에 30구가 1.21사태때 김신조하고 같이 넘어와서...

김태산

: 아, 청와대 습격사건때 왔던 사람들이군요.

제1묘역 제일 앞에는 지난 1968년 1월21일 청와대를 습격하러 왔던 북한요원들의 시신이 안치된 30개 묘가 있습니다.

당시 서울로 침투한 공비는 모두 31명.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씨는 현재 한국에서 기독교 목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태산씨는 이게 바로 역사의 아픔이라고 말합니다.

김태산

: 한 사람이 여기에 남아서... 북한 식으로 말하면 변절이라고 하겠죠. 어쨌든 잡혀서 귀순을 해서... (내가) 나와 보니까 목사가 돼 있더라구요. 아마 탈북자들이 여기 나와서 첨 듣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래도 살아 가지고 목사가 돼서 자기가 한 생 누릴 복을 다 누리고 사는데. 저기 묻힌 분들은... 뭐 그 사람보다 훨씬 빨리 저 세상에 가서 저렇게 주인도 없는... 정말 그 영혼들 마저 주인이 없이 이 세상을 떠돌고 있게 돼서 참 안됐고...

RFA의 취재로 이곳 적군묘지에 묻혀 있다는 시신 30구는 사실은 29구여야 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김신조 목사는 RFA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자신을 포함해 31명의 무장공비가 내려왔고, 한명은 북한으로 도망쳤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은 한국에 살고 있고 또 한명은 북으로 도망쳤으니 이곳 적군묘지엔 29구의 유해가 있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곳 적군묘지엔 30구가 있다고 말하자 김신조 목사는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말하겠다"며 숫자에 얽힌 일화를 하나 털어놨습니다.

당시 한국 군 당국은 북한 공비들이 대통령을 공격하러 온 당시 정황상 사로잡힌 자신을 제외한 30명의 공비를 모두 사살했어야 하는 분위기였고, 하지만 한명이 북으로 도망친 상황이었기 때문에 숫자를 맞추기 위해 사건 발생 한달 여 뒤 임진강에 떠 내려온 북한군인 한명의 시신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사건에 가담한 공비로 계산해 모두 30구의 시신을 찾은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당시 북한으로 살아 돌아간 공비는 북에서 '3중 영웅' 칭호를 받았고 한국의 특수부대 격인 '경보부대'의 장교 양성 기관인 <태천군관학교>에서 교장으로 일하다 사망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합니다.

이곳 적군 묘지는 1.21 사태 처럼 6.25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된 북한의 도발을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1998년 남해안에 침투하다 격침된 북한 반잠수정에 타고 있던 북한 공작원들의 시신 6구도 이곳 적군묘지에 있습니다.

기자

: 여기는 또 남해안 침투...

김태산

: 아, 잠수정 사건이네요. 이건 평화 시기에 들어왔던 사람들 아닙니까. 나도 북한에서 살던 사람으로서, 좀 죄스러운 감정이 있네요. 이게... 서로 같은 민족인데. 서로가 서로를 반대해서, 군사적인 침투를 했다가... 죄 없는 사람들이 여기 또 묻히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들이 무슨 나쁜 사람들도 아닌데. 일게 정치인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이렇게 같은 민족을 반대해서 나왔다가, 숨져서도 가족 친척들에게 가지 못하고 이렇게 묻혔다는 게 참 안돼네요.

지난 1997년 대한항공 KAL 858기 폭파 당시 김현희와 함께 공작을 진행한 다음 자살한 북한 요원 김승일의 시신도 이곳 적군묘지에 있습니다.

기자

: 아, 저기 있네요. 대한항공 폭파...

김태산

: 아 이게 KAL기 폭파사건때 김현희씨하고 같이 나왔다가 자결한 사람이군요.

기자

: 그러니까 이 적군묘지라는 게 6.25때 죽은 북한 군인, 그리고 중공군...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는데. 6.25 끝나고 나서도 80년대, 90년대 남해안 침투사건이라든지, KAL기 사건이라든지... 어떻게 보면 한반도 역사를... 어두운 면을 그대로 다 보여주고 있는...

김태산

: (한숨) 어쨌든 죽은 사람들을 놓고 이렇게 역사를 다시 되새겨 보게 되네요. 뭐 여기엔 KAL기 폭파 주범의 한 사람이 누워있지만, 그 KAL기가 폭파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남한 사람들이 그때 사망했어요. 참 어찌 보면... 왜 같은 민족끼리 그렇게 정치 체제가 다르다고 해서 자기네 사람까지 죽이면서 남의 사람을 죽이려고 비행기를 공중에서 폭파시키는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이런 무덤이 더 생겨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높이 50cm 가량의 자그마한 각 봉분 앞에는 흰색 말뚝으로 된 묘비가 있습니다. 하지만 묘지 주인의 이름과 계급이 적혀 있는 묘비는 20여기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이름이 확인되지 않아 '무명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대부분 6.25때 참전한 북한군 사병들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로 사망한 북한군들 중 현재까지 유해를 찾아 이곳 적군묘지에 안장한 건 모두 27구.

김춘애씨는 '무명인'이라고 적힌 묘비를 보며 자신의 시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김춘애

: 여기 와서 보니까 6.25 전쟁때 그... 참 저희 시아버지도 전사자 가족이거든요. 6.25 전쟁에 나와서 낙동강 전투에 참여했다가 전사했어요. 시체도 없고, 그냥 전사자증 하나만 갖고 여태껏 있었거든요. 50여년을... 그런데 여기 와 보니까, 혹시 우리 시아버지의 시신이 여기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이상야릇한 게 좀... 무거워 지네요.

또 여기 적군묘지에 묻힌 모든 북한 사람들이 누워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북녘땅이라는 사실에 김춘애씨는 눈시울을 붉힙니다.

김춘애

: 묻어 둔 것도 그저 의미 없이 묻어 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은 북한군인데, 북쪽을 향해서 자기 고향을 누워서도 바라볼 수 있게끔, 이렇게 관리해 주고 한다는 게... 어찌하면 자기의 적들을 이렇게 하나 하나 해 놨을까 하는 게 참... 이상합니다.

김태산씨 역시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이곳 적군묘지에 오면서 소주 한병, 꽃 한다발 갖고 오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말합니다.

김태산

: 아 참... 참 눈물이 나네요. 뭐... 값이 없는 눈물 같은데도 나오네요 어쨌든. (한숨) 북한에서는 이렇게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또 부모의 품으로 가지 못하고 여기에 묻혀 있는 것도 모르고... 북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 자식이 전쟁에 나가서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에 뼈나 묻혀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북한 사람들 보기도 참 안스럽구요. 재삼 당부하건데 빨리 통일이 되서 몇구 되지 않는 시체지만, 이 사람들이라도 빨리 가족들에게 갔으면 참 좋겠습니다.

한국 국방부 관계자는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에 유해 송환의사를 타진하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응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간첩과 공작원,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일 것"이라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김태산씨는 2005년 8월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8.15 민족대축전 참가차 서울에 왔다가 한국군 전사자의 위패가 묻힌 국립 현충원은 찾은 적이 있지 않냐며 왜 이곳 적군묘지는 방치하는 지 모르겠다고 탄식합니다.

김태산

: 우리 북한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이걸 보고 갔으면 좋겠네요. 뭐 지난 언제도 북에서 온 정부 대표단이 남한의 현충원 묘지에 갔었지요? 왜 거기만 가 보고, 자기네 민족의 아들들이 묻힌 이 묘지가 여기에 뻔히 있는 걸 알텐데, 이건 한 번 찾아가 보자고 하지도 않고... 응당 그 사람들도 찾아와서 이 묘지에 참배를 하고 이 묘지를 찾아가기 위해서 남한 정부와 당장 협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군 유해발굴 사업은 2000년부터 시작됐으며, 실탄과 장구류, 그리고 개인소지품을 감식해 시신이 북한군이나 중국군의 것으로 판명되면 제네바 협정 추가 의정서 34조에 따라 이곳 적군묘지로 옮긴다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