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어린 딸 옆에 세운채 서있던 그 여인…”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던 조선 노동당 작가 출신 시인이 남한으로 와서 북한의 처절한 현실을 알리는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발표해 남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2008-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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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 이시는 지금 남한의 신문, 방송, 인터넷에 올려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습니다. 시를 읽어 드립니다.

그는 초췌했다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
그종이를 목에 건 채
어린딸 옆에 세운 채
시장에 서있던 그 여인은


그는 벙어리였다
팔리는 딸애와
팔고 있는 모성을 보며
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
땅바닥만 내려보던 그 여인은


그는 눈물도 없었다
제 엄마가 죽을 병에 걸렸다고
고함치며 울음 터치며
딸애가 치마폭에 안길 때도
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던 그 여인은


그는 감사할 줄도 몰랐다
당신딸이 아니라
모성애를 산다며
한 군인이 백원을 쥐어주자
그 돈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딸을 판 백원으로
밀가루 빵 사들고 어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이 시는 탈북시인 장진성씨가 직접 목격한 처참한 현실을 소재로 쓴 것으로,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남겨진 어린 딸의 생존을 위해서 딸을 백원에 낯선 사람에게 넘기고 그 돈으로 마지막으로 딸에게 줄 밀가루 빵을 건네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탈북시인 장진성씨는 당시 그 어머니의 고통을 나누고 싶은 심정으로 이 시를 쓰게 됐다고 말합니다.

장진성: 평양 동대문구역 시장이었습니다. 그때 그 시장안에 많은 사람들이 다 울었어요 처음에는 그 여자가 항변도 안하고 그런데 그여자가 빵을 가지고 마지막 통곡을 하는데 지켜보던 사람들이 다 울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장진성씨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와 조선노동당 작가로 활동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을 두번이나 만날 정도로 김정일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북한에서는 상류층 생활을 누리던 시인이었습니다. 장진성씨는 자신의 보장된 삶이 ‘노예의 행복’이었음을 깨닫고 지난 2004년 북한에서 메모했던 글들을 품고 두만강을 넘었다고 말합니다.

장진성: 진짜 가장 가난한 나라에 가장 부유한 왕이 살고 있다는 것이 계기가 됐고 저도 김정일을 처음에 만났을 때는 감격이었습니다. 그러나 더이상 신이 아니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그렇게 굶어 죽는데 그 정권이 유지돼고 있다는 것은 비정상이죠 그 체제아래에서는 살지 못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진성씨가 남한에서 펴낸 시집에는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외에도 살고자 두꺼운 나무껍질을 망치로 두드려 양잿물에 섞어 끓이는 한숨섞인 어느 부엌의 모습을 그린 시 ‘우리 밥은’에서 부터 밥을 먹는 꿈을 꾼 것이 제일 맛있었다고 천진난만하게 말했던 굶어 죽은 동생을 그리는 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배고픔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가며 슬픔의 감정까지 잃어버린 북한주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장진성씨는 북한 주민들만이 희망이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작아도 / 생명의 힘으로 / 천하의 캄캄칠야 / 초월하던 희망의 점 // 내 맘 속엔 언제나 / 그 반디벌레가 있다” “그 빛이 반디벌레다” 북한에서는 조선노동당 작가 출신 시인으로 활동하던 장진성씨는 북한을 떠나온 지금도 반디벌레를 가슴에 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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