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해 전문직 여성 될 것” - 미 정착 탈북자 데보라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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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양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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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난민으로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들과 함께 천기원 목사와 마이클 호로위츠 (Michael Horowitz) 선임연구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RFA PHOTO/최병석

지난 2006년 5월 처음 정식 난민지위를 받고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데보라 최 씨는 미국 생활 1년이 된 지금 뉴저지의 한 한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영어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최 씨는 앞으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전문직 여성으로 미국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20대 중반인 최 씨는 지난 2004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다 지난해 미국으로 왔습니다.

요즘 많이 바쁜가?

요즘 그냥 일하고 공부하고 그런다. 일단 영어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은?

지난 1월부터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다. 한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안내비서(receptionist)로 일한다.

일하는 것 마음에 드나?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변호사 사무실에 쓰는 영어가 다 전문 용어기 때문에 일반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화 받고, 편지도 보내야 되고 파일도 정리하고, 또 컴퓨터에서 서류도 읽는 등 여러 사무 업무를 보조하느라 많이 힘들었다.

1년 만에 미국 생활이 많이 익숙한 것 같이 보이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웨이트레스(식당 종업원)하고 그 다음에는 네일(손톱미용)하고 이제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어디에 뭐가 있는 지 다 알고 하나도 낯설지 않고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처음 미국 와서는 어떻게 살지 막막하고 걱정도 많고 했는데 이제는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마음이 편해서 조금 나태해지고 게을러진 것이 탈이다.

영어가 어렵다고 했는데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늘지 않았나?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영어 알파벳도 몰랐다. 북한에서는 러시아말을 배웠다. 수학에서 쓰는 ABC 정도 밖에 몰랐다.

어떻게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 영어를 잘 하게 됐나?

그냥 처음에는 열심히 영어 공부하고 절대 한국 텔레비전도 안보고 미국 아이들하고만 어울리고 일부러 말 시키고 그랬다.

자동차 운전면허도 땄다고 들었다.

답: 뉴저지 사는데 공부하고 커뮤니티 칼리지(전문대학) 다녀야 하는데 뉴저지는 지하철도 없고 교통편이 힘들다. 그래서 짬짬이 컴퓨터에서 필기시험 문제 검색해 찾아서 공부했다. 뉴욕은 시험 문제가 20문제 정도 밖에 안 되는데 뉴저지는 50문제가 나온다. 지난달 시험을 봤는데 50문제 중에서 47문제 맞았다. 운전 실기시험은 7월 달에 본다.

그래도 벌써부터 운전할 수 있지 않나?

초보자 면허(learner's permit)를 받아 벌써 운전하고 있다. 운전 배워주는 목사님이 겁이 없어서 잘 한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냥 운동장에서 연습하고 둘째 날부터는 실제 길에 나가서 운전했다.

북한에서 자동차 운전 해봤나?

생각도 못했다. 북한에서는 여자들이 자전거도 못 탄다. 왜냐하면 고상한 조선 여성들은 치마 펄럭이면서 자전거 못 탄다. 농촌에서는 괜찮은데 도시에서는 못 타게 했다. 버스도 없고 기름이 없고 또 전기도 없어 전철도 안 다니고 그랬다. 자전거도 못 타는데 자동차는 생각도 못했다.

1년 동안 미국 살면서 어려운 일도 있었을텐데?

언어 문제 말고는 어려웠던 점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 2년 있을 때 열심히 살고 싶어도 신분증도 없이 숨어사니까 언제 잡힐지 모르는 상황이고 힘들었다. 젊었으니까 자기만 열심히 하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중국에서는 그것이 잘 안됐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 하니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그랬다.

중국에 있을 때 북한에 송환되거나 그러진 않았나?

그러지 않았다. 내가 키가 170센티미터 정도로 커서 중국 공안들 앞에 왔다갔다해도 내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몰라봤다. 작년에 6명 탈북자들이 미국 LA 공항에 내렸는데 마중 나온 분들이 꽃다발을 나에게는 안 주고 나머지 5명에게만 줬다. 나중에 키가 너무 커서 안내 요원인 줄 잘못 알았다고 말해줬다. 중국 북경에 살았는데 공안원들에게 길도 물어보고 그랬다. 그래도 잡힐까봐 무섭긴 했다.

미국 생활 1년의 감회나 소감은?

미국에 살다가도 어떻게 여기까지 내가 왔을까 가끔씩 깜짝 놀란다. 죽음을 무릎 쓴 그 힘든 과정을 다 거치고 왔는데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를 때가 있다. 미국에 오니까 자유스럽고 사람의 인권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여기는 '사람이 사는 것이 참 값이 있구나' 그렇게 느꼈다. 여기는 사람 사는 맛이 난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보니까 조그만 일, 말 한마디 잘못해도 인권 침해로 보상을 해야 하고 법정 투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참 인권을 중요시하고 사람을 존중한다고 느꼈다. 이런 나라에서 살게 돼 좋다. 작년 처음 여기 와서는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몰랐는데 1년 동안 변화도 많고 발전도 많아 너무 기쁘다. 1년 밖에 안됐는데 1년 전 모습에 비해 스스로 봐도 내가 많이 발전했다고 느낀다. 이만큼씩 앞으로 발전이 있으면 10년 후에는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니까 직접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돼보는 것은 어떤가?

변호사가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렵다. 그것은 안될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공부가 우선이다. 일단은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빨리 공부부터 하면 더 좋은 평생 직업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 낭비하지 않고 빨리 대학 공부를 마쳐 더 정규적이고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