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동독 난민 이야기” - 국제 스파이 박물관의 동독 탈출용 자동차

지금은 사라진 동독이란 나라는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아있다 지난 90년 서독에 의해 전격적으로 흡수 통일된 나라입니다. 당시 동서독 통일의 물꼬를 튼 데는 공산주의 붕괴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서독행을 감행한 동독 난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은 미국 워싱턴의 국제 스파이 박물관에 전시된 동독 탈출용 자동차를 소개해드립니다. 진행에 김연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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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에는 국제 스파이 박물관 (International Spy Museum)이라는 이색적인 박물관이 있습니다. 스파이는 영어로 간첩 또는 염탐꾼이라는 뜻입니다. 국제 스파이 박물관에서는 각국의 첩보활동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전시해 놓고 있는데, 특히 1930년대부터 냉전기간 동안 미국과 유럽의 첩보원들이 사용했던 각종 장비들은 관람객들의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전시된 장비들 가운데는 구둣솔이나 손목시계, 담배 갑 등으로 위장한 사진기, 그리고 우산이나 만년필, 담뱃대 등으로 위장한 권총이 있는가 하면, 각종 소형 도청장치와 암호 해독기도 있습니다. 또 특수잉크로 비밀지령을 써 넣은 편지지와 엽서도 있는데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특수한 형광 빛을 쪼이면 비밀지령이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스파이 박물관에는 과거 냉전시대 첩보활동과 관련된 역사 자료들도 함께 전시돼 있는데, 당시 활약했던 미국과 소련 간첩들의 증언이 비디오로 상영되고 있습니다. 연합군 측이 소련 점령아래 있던 동베를린에 파 놓은 굴도 실제 크기로 만들어서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땅굴은 동베를린 땅 밑에 깔아놓은 전화선을 찾아내서 소련 측의 통신을 도청하는데 쓰였습니다.

동서독 역사와 관련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탈출할 때 사용했던 자동차 모형입니다. 실물크기로 제작된 이 모형은 반으로 절단된 채 전시돼 있는데, 자동차 안에 어떤 식으로 사람을 몰래 숨겨서 태웠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뒷좌석에는 긴 상자 안에 인형이 누워 있고, 짐칸에는 인형 둘이 서로 엉켜서 옆으로 웅크린 채 누워 있습니다. 그리고 차 앞 뚜껑 밑에는 인형 하나가 엔진 위에 허리를 굽힌 채로 숨어 있습니다. 히터와 배터리를 들어내고 공간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박물관의 역사 연구관으로 있는 토머스 보가트 (Thomas Boghart) 박사의 설명입니다.

Thomas Boghart: 여기 전시된 자동차는 트라반트 (Trabant)라는 이름의 소형 자동차입니다. 동독이 1960년대부터 1989년까지 자체 생산한 자동차인데요, 자동차 거죽은 철판이 부족해서 플라스틱 재료를 이용해 만들었죠.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 89년 철거될 때까지 동독인들은 자동차를 이용해서 많이들 서베를린으로 탈출을 시도했는데요, 그때 주로 이용됐던 차량입니다.

그런데 여기 전시된 것처럼 네 명이 한꺼번에 차안에 숨기는 어려웠습니다. 차가 워낙 작아서 운전사까지 다섯 명을 싣기에는 힘도 부족했고, 겉에서 보기에도 금방 티가 나기 쉬워서 동독 국경경비대에게 들킬 가능성이 높았던 거죠.

그러나 차량을 이용한 탈출기도가 있다는 사실을 동독 국경 경비대가 알게 된 뒤부터 이 방법을 이용한 탈출은 성공 가능성이 굉장히 낮아졌습니다. 동독 국경수비대는 탐지견을 이용해 차량검색을 더욱 철저히 했습니다. 그리고 차안에 사람을 숨길만한 공간도 한정돼 있어서 국경수비대의 철저한 검문검색을 당할 경우 금방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Thomas Boghart: 냉전기간 동안에도 동서독은 교류를 계속했기 때문에 양측을 오가는 교통량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따라서 국경 경비대가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는 긴 차량행렬을 막고 일일이 검문검색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차량을 이용한 탈출은 이런 사정을 틈탄 것이었는데요, 사실 거의 운에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차 지붕에 빈 상자를 올려놓고 그 안에 사람을 숨기는 새로운 방법도 시도는 됐지만, 일단 검문검색을 당하면 이 역시 발각되기 일쑤였으니까요.

그래서 차량을 이용한 탈출은 많아야 열에 하나 정도밖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또 차 앞 뚜껑 밑에 숨는 방법은 경비대의 눈을 피하기는 좋았지만, 아주 위험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엔진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이를 못 견디고 사망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방법도 한 번 알려지고 난 뒤로는 더 이상 안전한 방법이 되지 못했습니다.

전시된 모형 자동차를 본 박물관 관람객들은 대체로 놀랍고도 슬프다는 반응입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개리 씨는 동독인들이 탈출을 위해 이런 고생까지 해야 했다는 게 몹시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Gary: Well, I think it's very bad that they had to go through this trouble to escape.

미국 뉴저지에서 온 키이스 씨는 동독인들이 자동차 엔진위에 엎드려 탈출한 이야기는 정말 놀라울 뿐이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탈출과정에서 사망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Keith: Wanting to escape your country that badly to spend time on the engine I find amazing.

자동차는 동독인들이 동독을 탈출할 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주 기발한 방법도 이용됐습니다. 어떤 가족은 직접 만든 열기구 풍선을 타고 동독을 탈출했습니다. 이 가족은 몇 달 동안 온 식구가 달라붙어서 바느질을 해가며 풍선을 만들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직후에는 이 장벽 밑으로 땅굴을 파서 탈출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서베를린를 가로막았던 콘크리트 장벽을 맨몸으로 넘어가려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경수비대에 걸려서 총살되거나 체포됐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철거될 때까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장벽을 넘어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5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주간기획 “독일난민 이야기” 오늘은 미국 국제스파이 박물관에 전시된 동독 탈출용 자동차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김연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