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선전 영상 속 아이 목도리 ‘흐림처리’한 이유는?
2023.12.28
앵커: 북한이 평양에 새로 지어진 야외 빙상장을 선전하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한 어린 아이가 두른 목도리에 쓰인 외국어를 흐림 처리했습니다. 외래 문물 차단을 목적으로 이뤄진 검열이라는 분석입니다. 자민 앤더슨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 오디오] 평양시 중심에 야외 빙상장이 훌륭히 꾸려져서 오늘 첫 운영을 시작했 습니다.
28일 조선중앙통신 웹사이트에 공개된 영상입니다.
해질녘 시간, 높은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야외 빙상장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습니다.
평양에 새로 지어진 빙상장을 홍보하는 3분 20초짜리 영상인데, 그 중 한 어린아이가 두른 목도리가 눈에 띕니다.
[영상 오디오] 스케이트 타기를 잘해서 훌륭한 어린이가 되겠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주황색 목도리인데, 무엇을 가리려는 듯 군데군데 흐림 처리가 되어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 과정 중인 탈북민 이현승 씨는 28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영어 또는 다른 외국어로 된 글자나 해당 브랜드 로고를 검열해 지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것’을 강조하며 외래문물 차단에 열을 올리는 북한.
주민들이 외국산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현승 씨: 북한 제품은 상대적으로 질이 낮고 외국 제품은 질이 좋기 때문에, 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북한 미디어에서 공개적으로 외국 제품을 선전하지는 않습니다. 북한이 생산한 제품이 제일이어야 하기 때문에 외국 글자가 있는 것을 검열해서 지워버리는 거죠.
한편 영상은 김 총비서가 ‘평양 주민들의 건강과 취미 생활을 위한 시설’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치켜세웁니다.
[영상 오디오] (평양)시 안의 청소년들과 근로자들이 겨울절 취미활동으로 몸과 마음을 튼튼히 단련하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내게 됐습니다. (중략)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께서 직접 발기하신, 인민 사랑의 책무(를 보여주는) 봉사 기지입니다. 인민들 편의를 도모할 수 있는 모든 봉사를 합니다.
극심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평양의 극소수 엘리트 층을 위한 위락 시설을 건설하고 이를 선전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미국의 비정부기구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렉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이날 RFA에 “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고 북한 어린이의 3분의 1은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지만, 김정은에게는 평양 엘리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 김정은 체제의 특징 중 하나는 북한 주민들이 매우 열악한 인도적 상황에 처한 가운데, 엘리트 층이 계속해서 정권에 충성하도록 자본을 투자해 소비 공간을 조성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위락 시설들이 지어질 때마다 주민들과 어린 아이들에게 제공할 식량 등의 자원이 뺏기게 됩니다.
한편 두꺼운 솜옷을 입은 평양 주민들이 웃으며 스케이트를 타던 지난 27일, 자강도 자성군은 당일 북한의 최저 기온 영하 19.4도를 기록했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