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장명화 jangm@rfa.org
지도자는 국민들을 웃게도 만들고 울게도 만듭니다. 어떤 지도자는 국민들을 고난에 빠뜨리고 어떤 지도자는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오늘부터 자유 아시아 방송은 세계의 지도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이시대의 지도자는 어떻게 인민들을 위해 일해야 하고 국가와 인민들은 지도자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RFA "세계의 지도자" 시리즈에서 여러분과 함께 그 답을 구해봅니다. 오늘 첫 편은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입니다. 장명화 기자가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고향, 조지아 주를 찾았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 "How are you doing? Thank you for coming!"
나지막한 목소리로 '안녕들 하세요? 와주어서 고마워요'라고 정겹게 인사합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젊은 어머니, 휠체어에 앉은 노인, 양손에 가득 책을 든 중국계 미국인. 평일인데도 전 미국 대통령의 신간을 사서, 저자의 서명을 받으려고 몰려든 사람만 최소 500명입니다. 신간 '백악관을 넘어'에 막 친필서명을 받아 환하게 웃는 흑인 여성 록산 레드와인씨입니다.
록산 레드와인: (Oh, I think he's wonderful. He's been a legend....)
카터대통령은 정말 멋진 분이예요. 가히 전설적이죠. 전 아주 어릴 적부터 집에서 늘 그 분의 이름을 들으며 자랐어요. 오늘 여기 와서 뵙게 된 것이 큰 영광이에요. (기자: 카터 대통령의 어떤 점이 좋으신데요?) (레드와인) 국민을 위하잖아요. 국민을 위한다는 것, 그게 저한테는 가장 중요한 점이죠.
물러난 뒤에도 국민을 위해 일하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그의 고향 마을 주민들이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데 는 그가 비단 미국의 대통령을 지냈다는 경력 때문이 아닙니다.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나 물러났을 때나 국민들과 함께 하는 그의 자세 때문입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 남한을 동시에 방문한 유일한 미국의 전직 대통령입니다. 비록 그의 북한 방문이 그가 대통령을 물러난 뒤에 이뤄졌다해도, 그는 남북한 국민들을 만나본 유일한 미국의 지도자입니다. 당시 그는 북한에 대해서는 핵을 갖지 말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북한 방문을 마친 뒤 김일성은 핵을 갖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런 그이기 때문에 최근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 쓴 소리를 자주 합니다.
Carter: (It would be deplorable and it ought to be prevented by diplomacy and by economic pressures, but if it should occur, as it has in North Korea...)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한탄스럽습니다. 외교와 경제제재로 해결해야합니다."
카터는 사람 존중 즉 인권을 잠시도 잊지 않았던 지도자입니다. 과거 한국에서 인권이 유린되던 시절 그는 이의 시정을 강하게 촉구했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카터는 당시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견제와 한국의 민주화를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 고위관료를 지낸 잭 헤이크스씨는 1975년부터 카터와 친하게 지내온 인삽니다. 카터가 북한을 제쳐두고 굳이 한국의 인권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Jack Hakes: (In many cases, you have to sort of say what your priorities are. In some ways, if you have alliance with a country...)

"대통령으로서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하죠. 한국과는 우선 동맹관계가 있었습니다. 동맹국으로서 높은 수준의 인권을 가지라고 촉구할 책임감을 느꼈던 겁니다. 북한과는 그런 동맹관계가 없었잖습니까?"
카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김영삼 등 반정부인사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결국 박정희 정부는 180명의 정치범 석방을 발표하고, 미국측은 주한미군 철수의 사실상 동결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카터가 추구하는 인권은 높은데 있지 않습니다. 늘 가까운데 있었고 그것은 대통령의 자리에 있다고해서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었고 그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나 자리에 물러나 고향에서 생활할 때나 늘 생활 속에서 추구해온 그의 가치이자 지도력의 바탕이었습니다. 오늘 책 사인회에 온 가족을 데리고 온 중년의 백인남성 패트릭씨의 말입니다.
Patrick: (He’s focused on human rights across the world. And he, more than any other president, has made that his focus, not just during his presidency, but his entire life. And that’s wonderful to be here to support him.)
"카터대통령은 세계 곳곳의 인권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대통령 재임시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그런 관심을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더 많이 표했습니다."
이 시민의 말대로 카터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제 3세계의 독재 권력을 견제하고 인권을 개선하는데 주력해 국제인권신장에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는 지난 1979년 11월 일단의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해 미국인 직원을 인질로 붙잡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도 인질이나 미국인을 붙잡은 이란 학생들의 생명을 염려해 군사적 무력 사용을 건의하는 참모들의 건의를 모두 거절합니다. 지난 주 조지아 주 에모리 대학에서 가진 강연회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어려웠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Carter: (We have about 75 hostages imprisoned by Iranians and they were held for 14 months. And almost all my advisers recommended that I attack Iran. I could have destroyed Iran...)
"당시 75명의 인질이 14개월간 억류돼있었습니다. 제 참모진들이 모두 이란을 공격하라고 조언했었죠. 미국의 엄청난 군사력으로 이란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었던 상황이죠. 하지만 공격하지 않기로 저는 결심했습니다. 대신 인내심을 갖고 협상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에게 행동으로 인질들을 구출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던 카터는 전면적인 군사작전이 아니라 가장 인명 피해를 적게 하고 인질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것은 소수 정예의 특공대를 헬기로 이란에 넣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이 사막의 강풍으로 특공대가 탄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갑니다.
카터가 대통령 직에서 물러가면서 인질 사태는 끝납니다. 그러나 물러가면서도 행복한 웃음을 짓는 대통령이 됐습니다. 어느 누구의 생명도 다치지 않고 모든 인질들을 조국으로 돌아오게 한 그의 인권 우선의 협상이 있었기 결실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테네시 주에 사는 바워스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자신은 인질사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카터의 무능함을 질타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바워스씨는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평가를 달리 하고 있습니다.
Larry Bowers: (He has not an overpowering personality. He's not as good an orator as some presidents have been. I think his strength lies in the weaker areas, so that's why a lot of people do not feel he's not good, strong president...)
"카터는 강력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여느 대통령처럼 달변가도 아니구요. 그의 강점은 오히려 취약한 부분에 있다고 봐요. 그래서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카터를 유능한 대통령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게죠."
다음시간에는 재선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 편안한 퇴임 대통령의 노후 생활을 거부하고, '세계 평화전도사'로 옷을 바꿔 입은 카터를 만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