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산가족상봉] “기약없는 이별…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서울-목용재 moky@rfa.org
201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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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딸을 만나고 온 황우석(89) 씨.
1차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딸을 만나고 온 황우석(89) 씨.
RFA PHOTO/ 이은규

앵커: 반세기가 넘는 기다림 끝에 헤어진 가족들을 만난 한국의 이산가족들은 혈육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현실에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단의 일원으로 딸을 만난 황우석(89) 씨도 짧았던 만남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는데요.

서울의 목용재 기자가 68년 만에 헤어진 딸을 만난 황우석 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황우석(89) 씨가 68년 만에 처음 잡은 딸의 손은 거칠었습니다. 얼굴에 주름도 가득했습니다. 3살의 어린 아이로만 기억하고 있던 딸의 얼굴에는 헤어져 있던 긴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지난 20일 1차 이산가족 상봉단의 일원으로 금강산을 방문한 황우석 씨는 딸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황우석 씨: 만나서 얘기했어요. 난리통에 지금까지 살아줘서 고맙다고. 내가 딸을 만나서 처음으로 한 말이 바로 고맙다는 말이었어요. 죽지 않고 살아줘서. 그러니까 이렇게 만난 것 아니겠습니까.

황 씨는 24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딸 황영숙(71) 씨, 손녀 고옥화(50) 씨와의 만남이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황해도 출신인 황 씨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인 1950년 부모님과 아내, 딸, 여동생 등 가족들과 헤어졌습니다. 황 씨는 “곧 돌아오겠으니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혈혈단신으로 서해를 통해 한국으로 내려왔습니다.

황 씨의 부모님과 여동생들,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현재 북한에 남아 있는 유일한 혈육은 딸뿐입니다. 이런 딸과의 재회는 반세기가 지나서야 이뤄졌습니다.

황 씨는 딸 황영숙 씨가 고생을 많이 하며 살아온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딸 황영숙 씨는 아버지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황우석 씨: 딸 나이가 70세인데 겉늙었더라고요. 주름도 많고. 그런데 (딸은) 고생스럽게 살았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제가 볼 땐 고생스럽게 살아온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대충 얼굴에 다 드러나잖아요.

딸 황영숙 씨는 68년 만에 만난 아버지에게 “그동안 원망을 많이 했다”면서 한풀이를 했다고 합니다.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보면서 딸로서 마음이 아팠다는 겁니다.

딸은 황우석 씨에게 “어머니가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황 씨는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황 씨의 아내는 딸을 시집보낸 뒤 40여 년 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황우석 씨: 북한에 두고 온 아내가 아마 재혼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 딸은 제 어머니께서 직접 키웠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내가 내가 돌아오기만을 고대하며 재혼을 하지 않다는 겁니다. 아내는 딸을 시집보내고 50세 즈음이 돼서 세상을 떠났대요.

황 씨의 아내는 황 씨와 헤어진 이후 딸을 데리고 자신의 친정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댁과의 왕래가 적어졌습니다. 황 씨는 딸을 통해 부모님과 여동생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묘소는 어디에 있는지 등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황 씨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부모님의 기일을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이는 곧 실망감으로 바뀌었습니다.

황우석 씨: 저는 부모님 기일을 몰라서 음력 추석과 설에 차례가 아닌 제사를 지내요. 부모님 기일을 모르니까요. 여동생 중 한 명이라도 살아있어서 이번에 같이 만났다면 부모님 기일을 알았을 텐데 여동생들이 모두 저보다 먼저 떠났습니다. 굉장히 애통해요. 막내 여동생은 지난 2016년에 세상을 떠났대요.

황 씨는 상봉장에 나온 딸이 자신의 진짜 딸이 맞는지 한동안 의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친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족사에 대해 물어봤지만 황 씨는 대화가 거듭되면서 의심을 거뒀습니다. 부녀 사이를 갈라놓은 긴 세월과 정치적 상황이 안타까운 상황을 만든 셈입니다.

황 씨는 상봉장을 떠나면서 딸에게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라는 작별 인사를 남겼습니다. 다음 만남은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은 알고 있다면서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바람은 갖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황 씨는 아직 북한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위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확인만이라도 하루속히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습니다.

황 씨는 “90세 이상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많은데 89세 밖에 되지 않는 제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다녀오게 돼 민망하다”며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하루빨리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만날 날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황우석 씨: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놓고 못 만나는 사람들이 몇 명입니까. 우선 생사확인이라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봉 행사를 정례화하면 이렇게 거창한 상봉 행사도 필요 없습니다. 당일 행사도 좋죠. 그렇게라도 안 되면 판문점 같은 곳에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얼굴만 보면 되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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