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절반 “북에서 청소년 때 한국 드라마 시청”
2023.03.31
앵커: 북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탈북민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나 방송을 시청한 경험이 있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2년 기본 연구과제로 수행한 ‘북한 청소년 정책 분석 연구’.
북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탈북민 1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49.2%가 당시 한국 드라마나 방송을 시청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사람을 연상케 하는 옷차림이나 꾸밈을 따라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43.2%, 한국 노래나 춤을 따라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49.2%로 모두 절반 가까운 수치를 보였습니다.
조사 대상 138명 가운데 79명이 김정일 집권기에, 39명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전환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기간 동안 한국 문화, 이른바 ‘한류’가 북한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김경준 선임연구위원은 말했습니다.
김경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한류가 북한 사회에 많이 확산되는 경향이 있어서 그와 관련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북한 내에서 통제가 점점 심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류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는 경향을 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응답은 조사 대상자 가운데 남자, 양강도 출신, 경제적으로 풍족한 계층에 속했던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한국 방송이나 드라마 시청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한국 드라마 시청으로 학교에서 처벌받는 것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40.6%로 조사됐습니다.
북한에서 경험한 소년단, 청년동맹 등 관제 소년 조직 활동이 장래 진학 및 진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응답은 과반을 차지했습니다.
소년단 활동 관련 질문에는 응답자 가운데 54.3%가, 청년동맹 활동에 대해선 52.9%가 진로 설정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변했습니다.
또 전체의 72.3%는 소년단과 청년동맹 활동을 하는 동안 경험한 호상비판, 즉 자아비판이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고, 도움이 됐다는 답변은 한 자리 수인 7.2%에 그쳤습니다.
북한 청소년들 가운데 다수는 경제적인 성공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북한에서 청소년기에 성공한 인생을 무엇으로 판단했느냐는 질문에 절반 가까운 47.1%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국가에 필요한 인재가 되는 것’,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각각 29%와 13.8%로 뒤를 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청소년 시기에 진로나 직업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질문에는 가장 많은 36.2%가 ‘부모의 출신성분’을 꼽았고, ‘집안의 경제력’은 33.3%, ‘부모의 정치적 지위’는 21.7%로 나타났습니다.
또 응답자 대부분인 87%는 청소년기에 장마당을 이용한 경험이 있었고, 이용 목적은 주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조사와 관련해 전체 응답자 수가 제한적인 만큼 그 결과만으로 현상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자 홍승욱,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