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권운동25주년] ②“북인권 조사·기록, 가해자 책임추궁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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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1996년 북한인권시민연합 창립을 시작으로 한국과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25주년을 맞았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과 북한인권기록관건립추진위원회가 마련한 북한인권활동 25주년을 돌아보는 두 번째 시간, 오늘은 북한 내 인권상황 실태를 조사하고 기록해 외부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을 소개합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03년 북한 인권 침해 사건의 실태조사와 기록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NKDB, 즉 북한인권정보센터.

북한 내에서 발생하거나, 북한 사람이 북한 밖에서 피해자나 가해자로 관여한 사건들을 조사하고 기록해 데이터베이스, 즉 방대한 자료의 집합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NKDB) 소장:이런 작업은 북한에 가서 직접 작업을 해야 하는데 지금 남북관계로는 북한에 가서 조사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탈북민이나 방북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왔습니다.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 들어오는 탈북민 수가 급증하면서 이들에 대한 대면조사 등으로 얻은 기록을 정리해 축적할 필요성이 생겼고, NKDB는 윤 소장 등 이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나 북한 인권 활동가들의 논의 끝에 2003년 설립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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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DB가 2019년 10월 서울에서 주최한 연례보고서 세미나 '북한의 북한인권, 남한의 북한인권 실태와 인식 차이’ (RFA PHOTO/홍승욱)

향후 남북통일이 이뤄졌을 때 그때까지 벌어진 북한 인권 침해 사건의 책임을 물으려면 사건 내용은 물론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체계적으로 기록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정보기술과 법과학을 활용해 북한 인권 침해 사건의 가해자 책임추궁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조사및 기록을 하는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도 이 같은 북한 인권 침해 사건 기록의 중요성에 공감해 지난 2014년 만들어졌습니다.

이영환 TJWG 대표는 대외적인 사회운동에 주력하는 단체들에 비해 조사·기록에 집중하는 단체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TJWG) 대표:조사·기록을 하는 단체들은 사실 더 많아져야 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단체들이 저마다 공들인 조사 기록들을 많이 생산해야 그것으로 캠페인을 하거나 북한 당국을 상대로도 더 치밀하게 따질 수 있고 국제사회의 압력도 높일 수 있는데, 조사·기록에 매진하는 단체가 NKDB 말고는 많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다가올 미래에 북한 인권 침해 사건의 가해자들을 법정에 세워 형사 책임을 묻는 상황을 가정하며 이 같은 조사·기록 활동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인권침해 가해자들이 형사 법정에서 유능한 변호사들을 고용해 방어에 나서는 경우,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논쟁에서 이기려면 결국 증거가 될 조사·기록을 더 방대하게, 체계적으로 해놓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TJWG) 대표:처형을 예로 들면, 그 시신들을 누가 어떻게 처리했고 현장이 어디인지를 찾는 작업인데, 나중에 법정에서 증언하겠다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겠지만 결국 가장 힘든 부분은 결정적인 증거를 찾는 것입니다.

이 대표는 한국 내 탈북민 수가 3만 명이 넘고 정보기술을 이용한 조사 수단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지금 북한 인권 침해 사건이 언제 어디에서 벌어졌는지, 특히 공간과 지리 정보를 기록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확보한 증거들이 훼손되거나 오염되지 않고 미래의 수사나 재판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또 남북이 통일되는 상황뿐 아니라 만약 북한 내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제3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동안 축적해 온 자료들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해 진상규명에 도움을 줄 지도 염두에 두고 조사·기록 활동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입니다.

또 다른 북한인권 단체 ‘NK워치’의 안명철 대표는 함경북도 회령 22호 정치범수용소 경비병 출신으로 지난 1994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안 대표는 지난 2010년 유엔 청원을 위해 제네바를 방문했을 때 북한 인권 피해를 입증할 증거 자료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을 계기로 NK워치가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북한 인권 조사·기록 및 고발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안명철 NK워치 대표:당시 유엔 관계자들로부터 '당신들은 북한에서 그렇게 많은 인권 피해를 입었는데 유엔에 관련 자료나 기록이 하나도 없느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많이 놀랐습니다. '아, 우리가 지금까지 말로만 했지, 기록을 남기지 않았구나' 하고요.

이후 법적근거가 될 수 있는 북한 인권 피해 관련 자료를 준비해 지속적으로 청원 자료를 유엔에 제출하고 있다고 밝힌 안 대표는 실제로 증언한 탈북민을 대리해 유엔에 공식적으로 개선 요청을 하는 등 국제 활동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 탈북민 출신으로 북한 내 인권 유린 실태를 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활동이 차별화 된다고 자평했습니다.

실제로 북한 당국이 최근 들어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 요구에 부쩍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에 따른 개선 사항이 탈북민 등의 입을 통해 들려올 때면 특별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 안 대표의 말입니다.

특히 중국 내 탈북민들과 관련한 인권 개선 요구사항은 중국 정부에도 전달되고 있는 만큼 그 의미와 효과가 크다는 설명입니다.

이처럼 각별한 의미를 가진 북한 인권 조사·기록 활동이지만, 활동가들이 겪는 어려움은 적지 않습니다.

조사 대상자들이 신변 안전이나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정보 제공을 주저하는 것, 조사·기록 활동이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후원 등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운 점 등이 이들이 꼽는 주요한 어려움입니다.

하지만 주요 조사 대상자인 탈북민들의 인적 정보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협조를 구하는 것 또한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탈북민들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이들이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대면 조사를 하는 것이 중요한데, 개인 정보 문제가 있어 한국 정부의 협조가 없으면 이들과 접촉하는 것부터가 큰 난관입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NKDB) 소장:탈북민들의 소재도 한국 정부가 관리하기 때문에 민간 연구자 단체는 이들을 찾는 것 자체부터 굉장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정보 제공자에 대한 접근성을 제약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20년 가까운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북한 인권 조사·기록 활동의 범위와 깊이는 날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한국 내 북한 인권단체들과 전직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 후원자들이 함께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라키비움, 즉 북한인권기록관은 북한 인권 침해 상황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 주목해 온라인에서 먼저 문을 열었습니다.

영어로 도서관을 뜻하는 라이브러리(Library), 누적된 자료를 뜻하는 아카이브(Archive), 박물관을 뜻하는 뮤지움(Museum)을 합쳐 만든 ‘라키비움’이라는 이름의 북한인권기록관은 말 그대로 도서관과 아카이브, 박물관의 성격을 모두 갖춘 종합적인 북한 인권 정보 제공을 목표로 만들어졌습니다.

송한나 북한인권기록관건립추진위원회 사무국장 :최근 빠르게 변하고 있는 디지털 정보화 시대 흐름에 맞춰서 온라인으로도 북한 인권 피해 기록을 종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또 시각화된 형태로 보여줄 수 있도록 온라인 기록관의 형태로 먼저 문을 열었습니다.

송한나 북한인권기록관 건립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은 북한인권기록관이 북한 인권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기술을 이용한 인권교육과 인권 개선활동에 대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한다는 운영계획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기록관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잊지 않기 위해 옛 수용소 위치에 건립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처럼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추모 공간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