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에서 꽃제비로 살다가 탈북한 변종혁 목사는 한국에 정착하기 전 여섯 번 북송을 당하고 각종 고문을 받았습니다. 변 목사는 강제북송은 인간에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사단법인 북한인권 주최로 15일 한국 국회에서 열린 ‘탈북민 선교 현장에서 본 인권 유린 실태’ 보고회.
변종혁 목사는 북한에서 꽃제비로 살다가 1999년 탈북했고 한국에 정착해 목사가 되었습니다.
변 목사는 고난의 행군 시기 식량을 구하겠다며 중국으로 떠난 어머니가 한 달이 넘어도 돌아오지 못하자 꽃제비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변 목사는 11세의 나이에 꽃제비 보호소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시체들이 쌓여있는 것을 목격한 이후 비로소 탈북을 결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탈북민 출신 변종혁 목사 : 12월이었는데 겨울이었습니다. 제 옆방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땅이 얼다보니까 시체를 묻지 못하고 태우지 못한 채 그저 시체 더미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 현실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바로 그곳에서 나와서 중국으로 탈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변 목사는 처음 탈북한 이후 여섯 번 강제북송을 당했으며 그때마다 각종 폭행과 고문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두 번째로 북송됐을 때 벨트를 차고 있다가 그 벨트로 고문을 받은 이후부터는 북송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벨트, 신발 끈 등 고문 도구가 될 만한 것은 미리 버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변 목사는 강제북송은 인간에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고 북송에 대해서는 자신이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탈북민 출신 변종혁 목사 :저는 여섯 번 탈북을 하면서 여러 가지 고문도 많이 받아왔어요. 각목을 여기 무릎 사이에 껴놓고 한 시간 정도 앉아있기도 했고요. 그러면 다리에 전혀 힘이 없어지고 일어서지도 못합니다. 잡혔을 때는 이제 벨트와 신발 끈 등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다 중국에 버리고요. 북송에 대해서는 제가 증인입니다.
변 목사는 또 생존권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데 지금도 북한에서는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부조리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탈북민 출신 변종혁 목사 :산다는 것은 인권하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인데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부조리한 일들이 북한에서는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 목사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 진정한 인권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북한 주민들을 위해 힘쓰는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나타나기를 희망했습니다.
국경지대에서 20여 년간 탈북민 선교 사역을 진행해온 박용배 목사는 북한 사회의 주체사상을 복음사상으로 대체하기 위해 탈북민 선교사를 양성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 목사는 때로는 바다에 돌을 던지는 것 같은 무력함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혼자서만 진행하는 탈북민 사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힘을 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한변은 이날 성명을 통해 6.25 한국전쟁 납북 피해자 가족 등이 북한 당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것에 대해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은 한변이 6.25 전쟁 납북 피해자 10명의 가족을 대리해 북한과 김정은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북한과 김정은이 피해자 가족에게 각각 1000~3000만 원씩, 미화로 약 7600~2만3000달러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한변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가 납북피해자들의 생사확인, 유해송환 등을 위해 적극 노력해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보관 중인 북한 조선중앙 TV 저작료에 대한 추심절차 등 판결문 집행에 필요한 후속 절차를 밟아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자 한도형,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