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당국, ‘매장’ 대신 ‘화장’ 강조
2024.11.13
앵커: 지난달, 자강도 수해복구 현장을 찾았던 김정은 총비서가 수해 사망자들의 묘를 보고 크게 화를 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북한 당국은 사회주의 장례문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겨울이 코앞인데 북한 당국이 뜬금없이 장례문화 시행을 독촉해 주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묘를 옮기거나 정리하는 작업은 청명절(4월4일 또는 5일)과 추석에만 할 수 있는데 시도 때도 없이 평장묘와 화장을 강요하고 있다고 복수의 양강도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양강도의 한 지식인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4일 “사회주의 장례문화를 강력히 시행하라는 김정은의 10월 21일 지시에 따라 최근 또 다시 무덤등록을 실시하고 있다”며 “기존에 등록을 하지 않은 무덤들은 지역 국토환경보호부에 등록을 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무덤등록제와 무덤허가제는 2021년부터 북한의 국토환경보호성이 주도하는 사업입니다. 조상과 가족의 무덤의 위치, 묘주 이름과 거주지를 지역 국토환경보호부에 등록하는 제도가 무덤 등록제이고, 사망자의 장지를 사전에 지역 국토환경보호부에서 허가 받는 제도가 무덤 허가제입니다.
소식통은 “내년 청명절까지 등록을 하지 않은 무덤들은 주인 없는 무덤으로 간주해 해당 기관인 안전부에서 유골을 처리한다는 내용을 인민반을 통해 주민들에게 통보하고 있다”며 “(무덤허가제가 시행된) 2021년 이후 국토환경보호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만든 묘들은 묘주에게 벌금이 부과된다는 내용도 함께 통보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1990년대부터 미관상의 이유로 화장을 적극 장려하면서 기존에 있던 묘지도 폭 1.5미터, 길이 2미터 규격의 평장묘로 바꾸도록 조치했습니다. 여기에 이어 2015년에는 사회주의 장례문화를 선전하면서 각 시, 군들에 납골당을 만들었고 화장을 적극 권장했습니다.
북한은 화장이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장례 문화로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다고 간주해왔습니다.
소식통은 “그럼에도 주민들이 여전히 전통 방식의 장례문화를 고집하자 김정은은 2019년과 2021년, 2023년에 전국적인 범위에서 평장묘(땅에서 15~20cm 정도 높게 평평하게 만든 봉분없는 무덤 형태)를 강제 시행했다”며 “새로운 사망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화장을 하도록 규정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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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양강도의 한 간부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6일 “사회주의 장례문화를 강력히 시행할 데 대한 지시는 지난달 21일, 자강도 수해복구 현장에서 김정은이 즉각 내린 것”이라며 “수해복구 현장을 돌아보던 김정은이 주변의 무덤들을 보고 크게 화를 냈다”고 전했습니다.
“수해 피해 당시 자강도는 넘쳐나는 사망자들의 시신을 빨리 처리하느라 화장을 하지 못하고 급하게 땅에 묻게 되었다”며 “시신 1구를 화장하려면 보통 40kg의 휘발유가 필요한데 사망자가 너무 많아 필요한 휘발유를 확보할 수 없었다”고 소식통은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2019년부터 해마다 청명절과 추석을 앞두고 평장묘를 화장할 것을 주민들에게 요구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잘 응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화장을 하는데 북한 근로자들의 두 달 반치 월급에 해당하는 휘발유 40kg을 요구하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식통은 “수해 사망자들의 무덤을 본 김정은이 ‘사회주의 장례문화 확립을 그토록 강조했는데 아직도 공동묘지를 만들고 있느냐?’고 간부들을 질책했다”면서 “’그만큼 말했으면 됐지, 도대체 몇십번, 몇백번을 강조해야 지시집행이 이루어지겠냐? ’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소식통은 “이젠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지정된 절차에 따라 전통방식의 무덤들을 빨리 처리하라는 것이 당시 김정은의 결론이었다”며 “올해는 당장 겨울을 앞두고 있어, 화장을 강력하게 몰아붙이진 못하겠지만 내년엔 화장을 매우 강력하게 몰아붙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소식통은 “김정은이 주장하는 사회주의 장례문화는 시신과 유골을 화장해 집이나 납골당에 보관하라는 것”이라며 “제사도 온 가족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요란하게 하지 말고 집이나 납골당에서 술 한잔으로 간단히 치르라는 것이 김정은의 요구”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수해복구 현장에서 수해 사망자들의 묘를 보며 추모는 못할 망정 화를 낸다는 게 말이 되냐?”며 “김정은이 아무리 사회주의 장례문화를 떠들어도 휘발유를 비롯한 화장비용이 너무 비싸 가난한 사람들은 화장을 꿈도 못 꾼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