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고아원서 지옥같은 삶…대책 마련 시급”

워싱턴-김소영, 이상민 kims@rfa.org
2019.05.03
Orphanage_testimony_b 2일 가족연구위원회에서 열린 북한자유주간 행사에서 탈북민 박모씨(가운데)와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회장(오른쪽 두번째)가 북한 고아원과 꽃제비의 실태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RFA PHOTO/ 김소영

앵커: 북한에서 오랫동안 고아원과 남의 집살이를 전전하다 중국을 거쳐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한 탈북민은 더 이상 자신과 같이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북한의 고아원에서 고통받는 어린이들이 사라지길 희망한다며 국제사회의 관심과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김소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자유주간을 맞아 미국의 북한자유연합이 2일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가족연구위원회(family research council)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석한 탈북민 박 모씨는 자신이 고아원에서 보낸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참담했던 경험을 담담하게 전했습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장사를 하러 나갔던 어머니마저 중국에 인신매매로 팔려가면서 10살 때 고아가 된 박 씨는 당시 6살이던 남동생과 함께 한 부부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170여명의 고아들과 함께 지옥같은 10년을 지냈습니다.

박 씨는 “북한의 고아원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며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굶어죽는가하면 탈출하려고 3층에서 뛰어내리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박 씨를 비롯한 고아원생들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밭일을 시작해 밤 늦게까지 고단한 노동에 시달렸고, 모든 생활이 혹독한 감시와 규율 속에 아무런 자유나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이 이뤄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아원을 운영하는 부부의 아들이 여자 고아들을 개인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성폭력을 가한 것입니다.

박 씨는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은 인간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도구나 노예처럼 취급됐다”면서 “고아원 원장마저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을 수습하느라 늘 정신이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성인이 돼 고아원을 나온 박 씨는 이웃집을 전전하며 지내다 인신매매 조직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간 후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해 현재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박 씨는 여전히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에는 인권보호 없이 떠돌아다니는 북한 아이들이 수없이 많다면서 국제사회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씨: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옥 같았던 방랑의 시간...지금도 누군가는 그렇게 살고 있고...저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를 꼭 해결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립니다.

이날 행사에 함께 참석한 ‘탈북난민인권연합’의 김용화 회장은 언론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린이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비춰지지만 북한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특히 중국에서 생활하는 떠돌이 고아, 일명 꽃제비들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탈북민 출신의 김 회장은 이들이 자국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해 중국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거나 인신매매로 팔리기 일쑤라며 이에 대해 한국과 중국 정부가 우선 북한 꽃제비 아동들에 대한 인권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미국 워싱턴 DC 연방하원 부속 건물에서는 북한 군대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 실태에 대한 탈북민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북한 포병부대에서 복무했던 강리혁 씨는 3일 북한 군대에는 먹을 식량이 부족해 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이 많다고 증언했습니다. 강 씨는 한 예로 동료 북한 군인 한명은 배가 너무 고파 독개구리를 산채로 먹고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국경경비대에서 복무했던 조영화 씨 역시 보초를 같이 서던 한 동료가 배가 고파 중국으로 넘어가 밥을 훔쳐먹다 적발됐고 결국 심한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북한군 간부들은 군대 내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병들에게 인근 민가에 가서 식량을 훔쳐오라고 지시하기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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