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노동당 비서를 지냈던 황장엽 씨를 암살하려고 특수 요원을 남쪽으로 보내 여전히 대남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황 씨가 남한에 온 지도 10여 년이나 지났는데 북한이 암살조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신분을 일반 탈북자로 위장해 남한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먼저 한국의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밝힌 이들의 신원과 입국 경로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20일 한국 당국에 구속된 이들은 북조선 정찰총국에 소속한 김명호, 동명관 소좌입니다. 92년 인민무력부 정찰국(현재의 정찰총국) 전투원으로 선발돼 대남 침투와 요인 암살과 관련한 훈련을 받아 인민군 전사에서 소좌까지 올라간 특수공작원입니다. 이들은 6년 동안이나 남파와 관련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착실하게 남파 준비를 하다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 김영철 상장의 눈에 들어 김 총국장에게 황 씨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작년 11월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탈북자로 위장한 뒤 평양-원산-청진-회령-옌지-라오스-태국-인천공항을 거쳐 올해 1-2월 한국에 왔습니다. 중국까지는 개별적으로, 태국까지는 일반 탈북자와 함께 들어갔습니다.
앵커: 이들이 남조선에서 펼치려던 임무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지요?
기자: 김 총국장에게서 "눈엣가시 같은 황장엽의 목을 따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중심 도시인 옌지에서 정찰총국 연락소의 요원을 만나서 12월까지 휴대전화와 공작금을 받고 신분을 위장하는 방법, 거점을 마련하는 방법에 관해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임무에 실패하거나 뜻을 이루기가 어려울 경우 제3국으로 나가 북한 대사관에 들어가 연락을 취하면서 다음 지령을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김 총국장은 이들을 남파하기 직전 만찬을 하며 이들에게 고급 위스키를 따라 주면서 "무슨 일이든 하겠느냐"고 물으며 황 씨 살해를 지시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앵커: 그런데 남조선으로 들어간 북조선 암살조는 어떻게 하다가 신분이 들통났습니까?
기자: 이들은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하는 합동 신문에서 단서가 잡혔습니다. 국정원은 탈북자를 상대로 탈북 목적과 경위 등을 확인합니다. 김 씨와 동 씨는 이 과정에서 가명을 쓰고 출신지를 속였습니다. 특히 동 씨는 황장엽 씨의 친척 행세를 하며 "황장엽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해 남조선행을 택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들은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이들이 말한 출신 지역이라고 하는 곳에서 온 탈북자들과 대질신문을 한 결과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북조선 정찰총국이 황 씨를 살해하기 위해 파견한 특수 공작원이라는 자백이 이들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설픈 공작원이었다는 이야기까지도 나옵니다.
앵커: 그렇다면 북한이 황장엽 씨를 죽이려고 암살조를 파견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기자: 황 씨가 김 총국장의 말처럼 '눈엣가시'였기 때문입니다. 황 씨는 이전에는 물론 최근에는 미국과 일본을 방문해 북한의 독재 체제와 권력 세습을 놓고 북한의 아픈 곳을 찔러대는 발언을 계속했습니다. 북한은 황 씨의 과거 비중으로 보아서 이러한 발언에다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외적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위가 실추하고 대내적으로는 세째 아들 김정은 씨에게 이어지는 권력 세습에도 나쁜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이것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됩니다. 또 암살조 파견은 탈북자와 망명자의 반북 활동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로 분석됩니다. 한국은 올해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맞습니다. 황 씨가 남조선에선 일부 탈북자의 구심점으로 있습니다. 북한은 황 씨에게 테러를 가함으로써 대북 방송이나 대북 전단의 살포와 같은 남한 내의 반북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보입니다.
앵커: 북한이 황장엽 씨에게 최근이나 옛날에 비난이나 협박을 한 적이 있나요?
기자: 물론 여러 번 있습니다. 특히 북조선은 황 씨가 미국과 일본에서 북한에 대한 비난 강도를 높이자 협박 수위를 같이 높여 왔습니다. 북한의 온라인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5일 '산송장의 역겨운 행각 놀음'이란 제목의 논평을 내고서 "추악한 민족 반역자이자 늙다리 정신병자"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황가 놈이 도적 고양이처럼 숨어 다니지만 결코 무사하지는 못하다"고 협박했습니다. 한편 김 위원장도 황 씨가 망명한 직후인1997년에 "개만도 못하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한 바가 있다고 일본의 마이니치(每日)신문이 4일 보도했습니다.
앵커: 황장엽 씨는 남한으로 온 이후 줄곧 신변 안전에 관해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남한 당국의 경호는 어떻습니까?
기자: 황 씨는 북한이 꼽는 테러 목표 1호여서 24시간 동안 경호원 7-8명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래서 이번 해외 방문도 철저한 보안 속에서 다녀왔습니다. 탈북자동지회나 자유북한방송에는 손도끼와 피가 묻은 황 씨의 사진에 칼을 박은 소포 등이 배달되기도 했습니다. 황 씨는 암살조 파견에도 "내가 몇 살인데 그런 것에 신경을 쓰겠느냐"고 반응했다고 측근이 21일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경찰은 황 씨에 대한 북조선의 테러 시도가 이번에 사실로 드러나면서 경호를 더 한층 강화했습니다. 경찰청은 황 씨를 경호하는 수준이 총리보다 더 높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북조선은 눈엣가시를 요원을 보내 살해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실례를 소개해 주시지요?
기자: 북한은 97년 공작원을 남파해 김 위원장의 전처 성혜림 씨의 조카인 당시 37세의 이한영 씨를 살해한 적이 있습니다. 이 씨는 2월 1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아파트 앞에서 총격을 받고 쓰러져 10일만에 사망했습니다. 이 씨는 성혜림 씨의 언니 성혜랑 씨의 아들로 1982년 스위스의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왔으며 김 위원장의 사생활을 비롯한 여러 극비 사항을 폭로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당시 이 씨를 눈엣가시로 생각했습니다.
앵커: 한국 당국이나 국민은 북한이 암살조를 보내 황장엽 씨를 살해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사건의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기자: 한국 당국은 세월이 가고 상황이 바뀌는데도 북한의 대남 강경책은 여전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탈북자로 위장해 남한으로 들어와 활동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들을 도우려는 간첩망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탈북자의 관리를 강화하고 탈북을 위장한 침투를 적발하는 체계를 갖출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한국 국민에게 북한의 테러와 무력 도발에 대한 경각심을 한 번 더 일깨워 주었다고 관측됩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황장엽 씨에 대한 암살 시도에 관해서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