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 씨 "북한 도발 결코 용납해선 안돼"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09.05.29
2009.05.29
노정민 기자가 전합니다.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이 시작되면서 김종선 씨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무겁습니다. 7년 전인 2002년 6월 29일, 서해의 연평도 해상에서 북방 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의 선제 공격으로 남한과 북한 간 교전이 발생해 남편인 한상국 중사가 전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치열했던 교전으로 남한 측에서는 한상국 중사를 포함해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습니다.
당시의 긴박하고 가슴 아팠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조차 애써 피하고 싶은 김 씨는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자신과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해 상에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제3의 교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김 씨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갑니다.
김종선 씨: 많이 걱정되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도 있고, '만약에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할 건지. 뉴스에서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께서 바로 응징을 하겠다고 하시지만 정말 그렇게 될는지...' 걱정이 많이 돼요.
김종선 씨는 현재 숭의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과 공부하고 시험 준비에다 시간제 아르바이트도 병행하면서 새로운 꿈을 개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의 상처를 씻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부족한 듯합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김 씨는 당시 남편의 죽음에 정부가 보여준 무관심에 실망을 느껴 2005년 한국을 등지고 미국행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김종선 씨: 매일 매일 저 자신과 하는 싸움이에요, 항상. 지금도 당연하죠. 한국에 돌아왔지만 편한 일도 없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모르고,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힘들더라고요. 그런 가운데 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매일 매일 저 자신과 하는 싸움인 것 같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다시 서해 상의 긴장이 높아지고 남북 간 교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자 김 씨는 또 자신과 같은 희생자가 많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자신이 이미 뼈저리게 겪은 아픔과 슬픔이기에 북한의 반복되는 도발을 이해도 못 하지만 용서도 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김종선 씨: 북한 정권에 대해서 할 말은 많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잖아요. 무력을 사용해서, 사람의 생명에 위협을 가해서까지 과연 무엇을 얻고 싶은지, 또 그것을 얻는다면 과연 무슨 득이 되는지, 과연 그것이 올바른 행동인지... 만약, 북한이 또 교전을 일으킨다면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바로 응징한다는 말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제2 연평해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면서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정부가 주관한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김 씨의 마지막 바람은 멋진 한 번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조치로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지금도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받고, 정신적인 치료도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조치를 남한 정부가 마련해주길 김 씨는 바라고 있습니다.
남북 간 갈등과 이에 따른 비극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김 씨는 치유되지 않는 슬픔에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또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매년 6월이 되면 더 사무칩니다. 북한의 진정한 사과 한 마디를 듣고 싶지만 그때가 언제일지도 알 수 없습니다.
지난 7년간의 기록을 모아 이르면 올해 안에 책을 출간할 계획인 김종선 씨는 이제 더는 자신과 똑같은 아픔을 겪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북한의 도발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김종선: 사과를 받고 싶지만, 사과를 한들 돌아가신 분들이 다시 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북한이 아무런 문제도 안 일으켰으면 좋겠어요. 무력을 사용하는 행위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요,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온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다 북한을 등지지 않을까요?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이 시작되면서 김종선 씨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무겁습니다. 7년 전인 2002년 6월 29일, 서해의 연평도 해상에서 북방 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의 선제 공격으로 남한과 북한 간 교전이 발생해 남편인 한상국 중사가 전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치열했던 교전으로 남한 측에서는 한상국 중사를 포함해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습니다.
당시의 긴박하고 가슴 아팠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조차 애써 피하고 싶은 김 씨는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자신과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해 상에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제3의 교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김 씨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갑니다.
김종선 씨: 많이 걱정되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도 있고, '만약에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할 건지. 뉴스에서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께서 바로 응징을 하겠다고 하시지만 정말 그렇게 될는지...' 걱정이 많이 돼요.
김종선 씨는 현재 숭의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과 공부하고 시험 준비에다 시간제 아르바이트도 병행하면서 새로운 꿈을 개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의 상처를 씻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부족한 듯합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김 씨는 당시 남편의 죽음에 정부가 보여준 무관심에 실망을 느껴 2005년 한국을 등지고 미국행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김종선 씨: 매일 매일 저 자신과 하는 싸움이에요, 항상. 지금도 당연하죠. 한국에 돌아왔지만 편한 일도 없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모르고,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힘들더라고요. 그런 가운데 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매일 매일 저 자신과 하는 싸움인 것 같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다시 서해 상의 긴장이 높아지고 남북 간 교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자 김 씨는 또 자신과 같은 희생자가 많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자신이 이미 뼈저리게 겪은 아픔과 슬픔이기에 북한의 반복되는 도발을 이해도 못 하지만 용서도 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김종선 씨: 북한 정권에 대해서 할 말은 많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잖아요. 무력을 사용해서, 사람의 생명에 위협을 가해서까지 과연 무엇을 얻고 싶은지, 또 그것을 얻는다면 과연 무슨 득이 되는지, 과연 그것이 올바른 행동인지... 만약, 북한이 또 교전을 일으킨다면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바로 응징한다는 말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제2 연평해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면서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정부가 주관한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김 씨의 마지막 바람은 멋진 한 번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조치로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지금도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받고, 정신적인 치료도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조치를 남한 정부가 마련해주길 김 씨는 바라고 있습니다.
남북 간 갈등과 이에 따른 비극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김 씨는 치유되지 않는 슬픔에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또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매년 6월이 되면 더 사무칩니다. 북한의 진정한 사과 한 마디를 듣고 싶지만 그때가 언제일지도 알 수 없습니다.
지난 7년간의 기록을 모아 이르면 올해 안에 책을 출간할 계획인 김종선 씨는 이제 더는 자신과 똑같은 아픔을 겪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북한의 도발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김종선: 사과를 받고 싶지만, 사과를 한들 돌아가신 분들이 다시 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북한이 아무런 문제도 안 일으켰으면 좋겠어요. 무력을 사용하는 행위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요,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온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다 북한을 등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