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정동에서는, 지난 2000년 2월부터 2003년 4월까지 함경남도 요덕수용소 구읍지구 서림천 지역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김수철(가명) 씨가 요덕수용소의 최근 상황을 증언하는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신변을 우려한 듯 모자, 마스크, 안경 등으로 얼굴을 가린 김수철 씨는, 자신의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수용소내의 인권유린을 낱낱이 밝혔습니다.

김수철 씨는 북한에서 무역 관계 사업을 하다, 오해가 생겨 간첩으로 몰리는 바람에 서림천 수용소로 보내져, 무려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5월, 남한에 입국했습니다.
김수철 씨가 기억하는 수용소 생활은, 배고픔과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김수철: 현재 식생활은 한 끼에 200g 먹고 혹독한 강제노동을 견뎌야 합니다. 수용소에서 가장 힘든 것은 강제 노동입니다. 여름에는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겨울에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강제노동을 시킵니다. 동계에 (근로시간이) 짧은 이유는 일찍 해가 떨어져, 어두울 때 도주 우려가 있다고 생각돼서입니다. 해가 떨어지면, 5시부터 8시까지는 다시 실내에서 새끼 꼬기 일을 연장해 시키고 있습니다.
김 씨는 특히, 지급되는 식량이 부족해, 영양실조와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수감자가 많았으며, 여자들의 경우, 생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김수철: 서림천 구역에 수감되어 있던 220여명의 수감자 중 절반은 죽는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죽은 만큼 또 새롭게 잡혀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200여명의 정도는 유지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하루에 3명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는 사람이 죽어 나갈 경우, 식량공급이 더 되기 때문에, 수감자들은 오히려 사람이 죽기를 기다리는 현상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수철 씨는, 요덕 수용소에는 탈북 했다 북송돼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수용소에 들어 온 탈북자들은 대체로 남한 행을 시도하다 잡혀 북송된 경우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수철: 요덕 수용소에서 내가 본 탈북자들은 대체로 한국행을 시도하다 수용소로 온 경우입니다. 내가 수감생활을 시작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탈북자들이 대거 수감되기 시작했으며, 많은 경우, 어떤 날은 20-30명 씩 한꺼번에 잡혀 들어온 경우도 있습니다.
서림천 지역 수감자가 약 200명 되는데, 그 중 같이 생활했던 탈북자가 40여명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 이미 죽었거나 내가 이름을 모르는 탈북자들이 서림천 지역에만 140여명은 더 있는 것으로.
김 씨는 북한 보위부에서 실적과 승진을 위해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유인해 납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함경북도 보위부 공작조가 지난 99년 국군포로 최상수 씨과 그의 아들인 최성일 씨를 유인해 납치했는데, 그들은 거의 반죽음이 되어 북송된 후, 현재 회령 종신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김 씨는, 자신이 수용소에 있는 동안 탈북자 수감자 중 35-40%가 죽어나갔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는 남한 행을 시도하다 수용소로 잡혀온 탈북자 중, 이번에는 수용소를 탈출하려고 하다 잡혀 공개처형당하는 경우를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수철: 제가 수감되는 동한 비밀처형과 공개처형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공개처형은 2차례나 목격했는데, 2003년 3월 5일, 김호석이라는 사람이 우연히 대열을 이탈했다고 도주했다고 판단, 공개 처형됐습니다.
또, 2000년 8월 26일, 보령에서 최광호라는 사람이 풀베기를 하다가 도주했다는데, 아마 힘이 들어 (다른 곳에서)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도주기도라고 하여 공개처형 했습니다. 수용소에서 공개처형은 모든 사람이 보는, 20-30m정도 앞에서 바로 공개처형 합니다.
수용소를 탈출하려고 하면 공개처형에 처합니다. 나도 수용소에서 2번 공개처형하는데 강제동원 된 적이 있습니다. 탈북을 해서 한국행을 시도하다 잡혀온 김호석 이라는 사람과 최광호라는 사람이 공개처형 당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들은 죽기 살기로 수용소 탈출을 시도했으나 끝내 경비대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처형장에 끌려 나왔는데 워낙 고문을 많이 받아 이미 죽은 상태나 다름없었습니다.
김 씨는 또, 수용소에서, 김정일 정권에 반대하는 말을 하고 다니다 몰래 끌려가 처형되는 경우도 있다며, 자신이 수감하는 동안 5명이 밤에 끌려 나갔다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김수철 씨는 자신의 증언으로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신변이 위협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치범수용소가 현재도 엄연히 존재하며, 특히 남한행을 시도하다 잡힌 탈북자들이 대거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북한인권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증언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진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