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시신 매장문제 논란

80년 넘게 모스크바의 붉은광장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는 레닌의 시신을 이제는 매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러시아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민주화세력은 수백만명을 숨지게한 독재자 기념관을 폐쇄하라고 하지만 그를 숭배하는 세력은 레닌을 매장할 경우 모스크바에 폭탄을 떨어뜨리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크렘린궁 근처 붉은광장에는 지난 1924년 세상을 떠난 니콜라이 레닌이 기념관 유리관속에 누워있습니다. 81년째 전시되고 있는 레닌의 시신에 대해 러시아 푸틴대통령의 측근인 중부 러시아 특사게오르기 폴타프첸코가 이제는 매장할 때가 됐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분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크렘린궁 근처, 국가 한복판에 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했습니다.

1991년 러시아의 공산정권 붕괴 이후 그동안 레닌의 매장문제는 줄 곧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민주세력쪽에서는 수백만 명을 숨지게한 독재자의 기념관을 폐쇄하라고 촉구해왔고 여전히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를 느끼면서 그를 숭배하는 세력들은 매장하면 모스크바에 폭탄을 떠뜨리겠다고 위협해 왔습니다. 레닌 시신전시관은 아직도 한해 150만명의 순례객들이 다녀가고 있습니다.

혁명을 통해 소비에트 연방을 창설하는데 성공한 레닌은 1924년 1월21일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원래 레닌은 페테르부르크의 어머니 묘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스탈린 등 당시 공산당 지도부는 선전용으로 영구 보존키로 하고 시신 부패가 시작되자 방부처리를 하고 미이라로 만들어 붉은 광장에 안치했습니다.

현재 레닌시신 보존과 관리를 담당하는 시신전담관리팀은 구 소련시절 ‘레닌묘 부설 생물구조과학연구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모택동과 호치민, 김일성 등 공산권국가 지도자들의 시신처리와 보존기술을 전수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레닌 매장 문제에 대해 계속 입장을 유보해왔습니다. 그는 2000년 정권 초기에 국민대다수가 이장을 동의할 때까지 유리관 전시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의 측근을 통해 매장문제가 흘러나온데 대해 분석가들은 국민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초창기 구 소련찬가와 휘장 등을 부활시키는 등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해 권력을 다져왔지만 그동안 민주화세력의 비판에 시달려 온 것도 사실입니다. 분석가들은 권력기반을 어느 정도 다진 푸틴대통령이 구세력과의 선긋기, 레닌과의 결별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한편 독일 베를린 홈볼트대학의 울라프 라더교수는 그의 저서 사자와 권력, 즉 죽은 자와 권력에서 권력자의 죽음을 독재자들이 권력계승에 이용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은 자를 떠받드는 행위가 과거 집단적 추억을 떠올려 일체감을 갖게함으로써 권력정통성을 확보하고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울라프 교수는 또 유골이 지닌 상징성과 힘에 관한 예로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시신을 둘러싸고 벌어진 볼리비아와 쿠바의 줄다리기를 들고 있습니다. 1967년 볼리비아군은 게바라를 사로잡아 총살한 후 양손을 자르고 공항 활주로에 묻어버렸습니다. 추모의 싹조차 틔우지 못하게 하고 혹시라도 떠도는 혁명의 열정을 매장해버리겠다는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쿠바의 고고학자들은 30년 만에 그의 유골을 찾아냈고 쿠바로 옮겨져 혁명의 불씨로 이어가는 구심점으로 삼았습니다.

이장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