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부터 온 납북어부의 편지

지난 1975년 8월 동해상에서 '천왕호'를 타고 오징어 잡이에 나섰다가 납북됐던 선원 허정수(53)씨가 최근 남측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허씨는 이 편지에서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여러번 탈북을 시도했지만 실패해 이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라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습니다.

nk_ship_family-200.jpg
66년전 북한 청진에 살았던 한 할아버지가 북녁 고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AFP PHOTO

지난 1975년 당시 23살의 젊은 나이에 형 허용호씨와 함께 오징어 잡이 배에 탔다가 납북된 허정수씨는 지난 7일 남측 가족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허정수씨는 이 편지에서 연로한 아버지와 동생들을 보고싶어서 참을 수가 없다면서, 가족을 만나려고 탈북을 여러번 시도했으나 엄격한 통제와 감시 때문에 이제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며 자신의 위급한 처지를 호소했습니다.

정수씨는 특히 현재 감시 대상으로 취급받고 있어서 소식을 전하기도 힘들며 너무나 많은 두려움이 닥치고 있다고 썼습니다. 그는 이어 아버지에게 불효자식을 이제 잊고 몸 건강히 오래오래 사시라는 인사말을 남겼습니다.

허정수씨의 남측 동생 허용근씨는 형이 보낸 이같은 내용의 편지를 최근 남한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를 통해 전달 받았다고 28일 자유아시아 방송에 확인했습니다.

동생 용근씨에 따르면, 형이 북에서 보낸 편지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앞서 형 정수씨는 지난해 2차례에 걸쳐 보낸 편지에서 고향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냈습니다. 동생 용근씨는 형의 편지를 받고 형의 탈북을 여러차례 도왔지만 번번히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형 정수씨가 탈북 시도로 당한 모진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이며 신변에 큰 위협을 받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라며 형의 구명을 호소했습니다.

허용근: 그 동안에 몇 번 탈출을 하려다 두들겨 맞기도 하고 이제는 탈출도 안 되고 제재가 가해질 것 같습니다. 이 소식이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면서 편지 내용으로 봐서는 생명에 위협까지고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방당할 위험도 있다고 하던데 깊은 곳으로 보낸다거나 하는.

동생 용근씨는 특히 이번 편지를 받아본 올해 88살의 연로하신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들의 상심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아버지는 죽기 전에 납북된 아들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셨는데, 아들을 잊으라는 이번 편지가 도착한 후부터 밥한술 제대로 뜨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허용근: 첫 번째 두 번째 편지를 받았을 때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이번 편지는 절망스럽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서같은 형식으로 편지가 와서 저희 가족들이 착잡하고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버님이 계시는데 아버님을 제게 잘 부탁한다고 아버님께 자신을 잊으라고 그렇게 썼어요 아버지가 올해 88세 되셨는데 그동안에는 편지를 두 번째 받을 때까지는 인내하셨는데 이번 편지를 받고 밥도 안 드시고 세상만 한탄하시고 그러십니다.

이번 편지에는 정수씨와 함께 납북됐던 첫째형 용호씨에 대한 사망소식도 담겨 있습니다. 지난 2001년 북한에서 병으로 죽은 줄만 알았던 맡형 용호씨가 술김에 고향과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 놨다가 북한 당국에 고발돼 모진 고문과 감시에 시달리다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허용근: 고향 생각나고 그래서 푸념을 했는데 그것이 고발조치가 돼서 시달림으로 자결을 했는지 고문에 의해서 죽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렵게 먹지도 못하고 세상을 떴다고 그런 내용이 왔습니다.

동생 용근씨는 그동안 남한정부에 형의 구명을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토로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오는 13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남북 장관급 회담때 아버지와 함께 북에서 사망한 큰형 용호씨의 제사를 모시고 납북자들의 송환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형에 관한 보도가 나가면 형의 신변이 더 위험해 질 수도 있지만 가족이 희생하더라도 납북자에 대한 인권실상을 널리 알리고 아직 송환되지 않은 480여명의 납북자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허용근: 납북된 사람이 우리뿐만이 아니라 480명이 있는데 한사람이라도 폭로를 해서 뜻이 관철이 돼서 정부에서 송환이라든지 빨리 해결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수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