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싶었습니다] ‘평양 콩 우유 공장 건설 홍보대사’ 이희아 씨 "천원의 행복 느껴 보세요"
서울-박성우 xallsl@rfa.org
2009.02.25
2009.02.25
RFA PHOTO/박성우
'만나고 싶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이 '콩 우유' 홍보 대사를 맡은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입니다. 이희아 씨는 선천성 장애가 있어서 손가락이 한 손에 두 개씩 네 개뿐이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사랑을 전하고 있는데요. 이희아 씨는 북측 어린이들이 콩 우유를 먹을 수 있도록 남쪽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천원의 행복"을 느껴 보시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희아 씨는 7월엔 직접 평양을 방문해 이 콩 우유 공장을 둘러볼 계획이라는데요. 북한을 방문하면 들려주겠다는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이희아 씨가 피아노를 치면서 어머니 우갑선 씨와 함께 불러 주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를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박성우: 안녕하세요?
갈렙 (매니저): 안녕하세요, 잘 찾아오셨네요.
이희아: 아, 기자님! 어서 오세요.
박성우: 네, 반갑습니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이희아 씨의 집을 찾은 건 26일 오후 2시경입니다. 거실에는 서울에 있는 '평화방송' 제작진이 먼저 와 희아 씨와 함께 한 시간짜리 텔레비전 방송을 제작하기 위해 자료를 펼쳐놓고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희아 씨는 최근에 시작한 북한 어린이 돕기와 관련된 자료를 보여주며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박성우: 희아 씨, 인터뷰 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희아: 네, 감사합니다.
박성우: 요즘도 많이 바쁘시죠? 인터뷰도 많이 밀려 있는 것 같던데.
이희아: 네. 그런데 지금 미국발 경제 위기로 공연이 많지는 않은 편인데, 그래도 공연 초청이 들어오면 계속 하고 있고요. 텔레비전 촬영 같은 것도 하고 있고, 연습도 꾸준히 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박성우: 희아 씨, 2007년 9월에 북한 장애인들을 돕기 위한 피아노 콘서트 행사를 하셨잖아요? 그 이후로도 계속 하고 계신지요?
이희아: 제가 그 이후로 휠체어를 잘 전달했고. 북측에서도 감사해 하고.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에서 확인증도 보내줬고요. 그리고 사진 자료들도 ITF (국제태권도연맹)에서 보내줬고.
박성우: 2007년 당시엔 태권도 연맹을 통해서 북측에 장애인들을 위해서 휠체어를 보내는 활동을 하셨다는 건데. 그때 휠체어는 몇 대를 보내셨나요?
이희아: 그때 1,004대까지는 못 보냈지만, 반 정도는 보냈어요.
박성우: 그렇군요. 목표가 1,004, 희아 씨 별명이 '천사'이기 때문에 1,004대를 보내려고 했는데, 그건 안 됐지만, 반 정도를 보냈다는 거군요?
이희아: 네. 북측에서도 굉장히 고맙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박성우: 알았습니다. 희아 씨, 요즘엔 북측 어린이들 위해서 콩 우유를 만드는 공장을 짓는데 관여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설명 좀 부탁할게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이희아: 김해에 인제 대학교라고 있잖아요. 그 학교의 박재섭 도서관장님과 제가 공연 끝난 다음 식사를 하면서, 그 관장님이 이 단체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셨어요. 저희가 사실 생각을 다시 해 보니까, 휠체어도 중요한데, 북측에는 식량난이 더 급하거든요. 그래서 콩 우유 일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한 달에 천 원이면 북측 어린이들에게 일주일 동안 콩 우유를 먹일 수 있기 때문에, '천원의 행복'이라는 CMS (은행에 후원금을 자동이체 하는 방식) 홍보대사를 제가 맡아서 홍보하고 있고요.
박성우: CMS는 뭔가요?
이희아: '천원의 행복'이라는 CMS 후원 용지를 만들었습니다. (돈을) 보내는 사람 주소에 한 달에 천 원, 5천 원, 만 원까지 자동이체로 나가게 돼 있어요. 체크를 하셔서 경통협(경남통일농업협력회)으로, 통일농업협력회로 보내 주시면, 이 '천원의 행복'에 동참하실 수 있어요. 그리고 제가 음악회 때 CD 판매를 하잖아요. CD 판매 진열대 옆에도 제가 이 '천원의 행복'을 가져다 놔요.
박성우: 그렇군요. 7월경에는 콩 우유 공장의 홍보대사로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처음 가시는 거지요?
이희아: 네, 처음 가고요. 경남통일농업협력회에서는 6월까지 (공장을) 완공하는 걸로 확정해 뒀더라고요. 그래서 7월에, 남북관계가 경색돼서 안 좋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느끼고 이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7월에는 제가 저의 어머님과 저의 매니저 오빠, 반주하시는 오빠와 함께 4명이 경통협 식구분들과 같이 평양을 방문해서, (공장이) 완공된 모습을 보러 가는 거에요. 콩 우유도 어린이들에게 한 잔씩 나눠 줄 거에요.
박성우: 홍보 대사까지 맡을 정도면, 정말 이 일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어느 신문 보도에 보니까, '홍보 대사 일을 평생 할 생각이다'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그런 말씀까지 하셨습니까?
이희아: 저는 어렸을 때, 제 일기에 통일이 될 때까지 저는 통일을 위해서라면, 우리 민족을 위해서라면. 성경에 '그리스도와 떨어져 나가서 지옥에 갈지언정 우리 동족을 위해서 나는 목숨까지 바치겠노라'고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 사명감이 있고요. 예수님께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하셨기 때문에. 지금 북측의 상황이 그렇거든요. 그래서 이 콩 우유를 통해서 정말 저는 통일이 될 때까지, 또 북측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살 그날까지, 이 일을 할 거에요.
박성우: 아주 깊고 넓은 뜻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희아 씨가 저와 처음 인터뷰를 했을 때가 2007년 12월이었고, 그때 참 들떠 있으셨어요. 그다음 해였던 '2008년 6월에 평양에서 공연할 계획이 잡혔다'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북측에서 굉장히 인기있는 노래인 '임진강'을 피아노곡으로 연습하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거든요. 그런데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 말씀을 좀 부탁할게요.
이희아: 제가 그때 한국에서 공연이 있었어요. 경북 울진에서 공연이 있어서 가지 못했고. 그런데 북측에서는 또 '언제든 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고요. 그리고 이번에 경통협을 통해서 가서 피아노가 있는 자리라면 저는 꼭 제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박성우: 이번에 가셔서 기회가 되면 피아노 연주는 하고 싶다는 말씀이시고, 그러면 '임진강'을 연주해 보실 생각이신지요?
이희아: '임진강'은 연주도 연주지만, 노래가 더 유명하거든요. 그래서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요.
(임진강)
피아노 반주: 이희아
노래: 이희아, 우갑선 (어머니)
박성우: 마지막으로, 북한에 7월에 방문하시게 되면 북측 동포들을 만나게 될 텐데.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 것 같아요. 미리 한 말씀만 부탁할게요.
이희아: 너무 지금 힘들잖아요? 그런데 힘든 것을 절망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저처럼 장애의 몸인 사람도 살고 있기 때문에, 희망을 품으시고. '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분 곁에서 경통협(경남통일농업협력회)과 함께 늘 도와드릴 테니까, 늘 꿈을 가지고 희망을 품으시고, '살 수 있다'는 걸 늘 마음속에 새기면서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박성우: 네, 이희아 씨, 저와 '만나고 싶었습니다' 인터뷰가 두 번째인데. 다시 한 번 너무 감사드리고요. 나중에 또 평양 다녀오셔서, 한 번 더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희아: 네, 감사합니다.
이희아 씨는 7월엔 직접 평양을 방문해 이 콩 우유 공장을 둘러볼 계획이라는데요. 북한을 방문하면 들려주겠다는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이희아 씨가 피아노를 치면서 어머니 우갑선 씨와 함께 불러 주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를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박성우: 안녕하세요?
갈렙 (매니저): 안녕하세요, 잘 찾아오셨네요.
이희아: 아, 기자님! 어서 오세요.
박성우: 네, 반갑습니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이희아 씨의 집을 찾은 건 26일 오후 2시경입니다. 거실에는 서울에 있는 '평화방송' 제작진이 먼저 와 희아 씨와 함께 한 시간짜리 텔레비전 방송을 제작하기 위해 자료를 펼쳐놓고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희아 씨는 최근에 시작한 북한 어린이 돕기와 관련된 자료를 보여주며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박성우: 희아 씨, 인터뷰 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희아: 네, 감사합니다.
박성우: 요즘도 많이 바쁘시죠? 인터뷰도 많이 밀려 있는 것 같던데.
이희아: 네. 그런데 지금 미국발 경제 위기로 공연이 많지는 않은 편인데, 그래도 공연 초청이 들어오면 계속 하고 있고요. 텔레비전 촬영 같은 것도 하고 있고, 연습도 꾸준히 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박성우: 희아 씨, 2007년 9월에 북한 장애인들을 돕기 위한 피아노 콘서트 행사를 하셨잖아요? 그 이후로도 계속 하고 계신지요?
이희아: 제가 그 이후로 휠체어를 잘 전달했고. 북측에서도 감사해 하고.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에서 확인증도 보내줬고요. 그리고 사진 자료들도 ITF (국제태권도연맹)에서 보내줬고.
박성우: 2007년 당시엔 태권도 연맹을 통해서 북측에 장애인들을 위해서 휠체어를 보내는 활동을 하셨다는 건데. 그때 휠체어는 몇 대를 보내셨나요?
이희아: 그때 1,004대까지는 못 보냈지만, 반 정도는 보냈어요.
박성우: 그렇군요. 목표가 1,004, 희아 씨 별명이 '천사'이기 때문에 1,004대를 보내려고 했는데, 그건 안 됐지만, 반 정도를 보냈다는 거군요?
이희아: 네. 북측에서도 굉장히 고맙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박성우: 알았습니다. 희아 씨, 요즘엔 북측 어린이들 위해서 콩 우유를 만드는 공장을 짓는데 관여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설명 좀 부탁할게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이희아: 김해에 인제 대학교라고 있잖아요. 그 학교의 박재섭 도서관장님과 제가 공연 끝난 다음 식사를 하면서, 그 관장님이 이 단체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셨어요. 저희가 사실 생각을 다시 해 보니까, 휠체어도 중요한데, 북측에는 식량난이 더 급하거든요. 그래서 콩 우유 일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한 달에 천 원이면 북측 어린이들에게 일주일 동안 콩 우유를 먹일 수 있기 때문에, '천원의 행복'이라는 CMS (은행에 후원금을 자동이체 하는 방식) 홍보대사를 제가 맡아서 홍보하고 있고요.
박성우: CMS는 뭔가요?
이희아: '천원의 행복'이라는 CMS 후원 용지를 만들었습니다. (돈을) 보내는 사람 주소에 한 달에 천 원, 5천 원, 만 원까지 자동이체로 나가게 돼 있어요. 체크를 하셔서 경통협(경남통일농업협력회)으로, 통일농업협력회로 보내 주시면, 이 '천원의 행복'에 동참하실 수 있어요. 그리고 제가 음악회 때 CD 판매를 하잖아요. CD 판매 진열대 옆에도 제가 이 '천원의 행복'을 가져다 놔요.
박성우: 그렇군요. 7월경에는 콩 우유 공장의 홍보대사로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처음 가시는 거지요?
이희아: 네, 처음 가고요. 경남통일농업협력회에서는 6월까지 (공장을) 완공하는 걸로 확정해 뒀더라고요. 그래서 7월에, 남북관계가 경색돼서 안 좋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느끼고 이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7월에는 제가 저의 어머님과 저의 매니저 오빠, 반주하시는 오빠와 함께 4명이 경통협 식구분들과 같이 평양을 방문해서, (공장이) 완공된 모습을 보러 가는 거에요. 콩 우유도 어린이들에게 한 잔씩 나눠 줄 거에요.
박성우: 홍보 대사까지 맡을 정도면, 정말 이 일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어느 신문 보도에 보니까, '홍보 대사 일을 평생 할 생각이다'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그런 말씀까지 하셨습니까?
이희아: 저는 어렸을 때, 제 일기에 통일이 될 때까지 저는 통일을 위해서라면, 우리 민족을 위해서라면. 성경에 '그리스도와 떨어져 나가서 지옥에 갈지언정 우리 동족을 위해서 나는 목숨까지 바치겠노라'고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 사명감이 있고요. 예수님께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하셨기 때문에. 지금 북측의 상황이 그렇거든요. 그래서 이 콩 우유를 통해서 정말 저는 통일이 될 때까지, 또 북측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살 그날까지, 이 일을 할 거에요.
박성우: 아주 깊고 넓은 뜻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희아 씨가 저와 처음 인터뷰를 했을 때가 2007년 12월이었고, 그때 참 들떠 있으셨어요. 그다음 해였던 '2008년 6월에 평양에서 공연할 계획이 잡혔다'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북측에서 굉장히 인기있는 노래인 '임진강'을 피아노곡으로 연습하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거든요. 그런데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 말씀을 좀 부탁할게요.
이희아: 제가 그때 한국에서 공연이 있었어요. 경북 울진에서 공연이 있어서 가지 못했고. 그런데 북측에서는 또 '언제든 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고요. 그리고 이번에 경통협을 통해서 가서 피아노가 있는 자리라면 저는 꼭 제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박성우: 이번에 가셔서 기회가 되면 피아노 연주는 하고 싶다는 말씀이시고, 그러면 '임진강'을 연주해 보실 생각이신지요?
이희아: '임진강'은 연주도 연주지만, 노래가 더 유명하거든요. 그래서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요.
(임진강)
피아노 반주: 이희아
노래: 이희아, 우갑선 (어머니)
박성우: 마지막으로, 북한에 7월에 방문하시게 되면 북측 동포들을 만나게 될 텐데.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 것 같아요. 미리 한 말씀만 부탁할게요.
이희아: 너무 지금 힘들잖아요? 그런데 힘든 것을 절망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저처럼 장애의 몸인 사람도 살고 있기 때문에, 희망을 품으시고. '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분 곁에서 경통협(경남통일농업협력회)과 함께 늘 도와드릴 테니까, 늘 꿈을 가지고 희망을 품으시고, '살 수 있다'는 걸 늘 마음속에 새기면서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박성우: 네, 이희아 씨, 저와 '만나고 싶었습니다' 인터뷰가 두 번째인데. 다시 한 번 너무 감사드리고요. 나중에 또 평양 다녀오셔서, 한 번 더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희아: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