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의 모바일 북한] 통화요청 통보문
2019.12.3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연호입니다. ‘모바일 북한’, 오늘은 통화요청 통보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손전화 통보문을 한 달에 얼마나 사용하시나요. 분기요금 3천 원을 내면 한 달에 통보문 20개를 보낼 수 있죠. 그런데 최근에 북한을 방문한 사람한테 들은 얘기인데요, 한 달 기본 통화시간을 다 쓰고 나면 통보문 5개를 더 보낼 수 있다는군요. 일반적인 통보문이 아니라 통화를 요청하는 통보문입니다. 내가 통화시간을 다 써서 당신한테 손전화를 걸 수 없으니, 당신이 내 번호로 전화해라, 이런 의미인 거죠.
북한 손전화 회사 입장에서는 손전화 번호가 찍힌 간단한 통보문 5개를 사용자들에게 덤으로 주는 대신에 통화시간을 더 사용하도록 부추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손전화 사용을 어떻게든 확대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한국에도 통화요청 서비스가 있습니다. 대신 공짜는 아닙니다. 상대방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화를 걸면 혹시라도 실례가 되거나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통화요청 서비스가 아주 편리합니다. 전화통화를 할 수 있을 때 내게 전화해 달라, 이런 의미로 통보문을 보내는 겁니다.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안 받거나 통화 중이거나, 아예 손전화 전원을 꺼 놓은 경우에도 통화요청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손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는 지역에 있을 때도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겠죠. 매월 한국돈으로 5백원에서 8백원 정도, 그러니까 반달러 정도의 부가 서비스 이용료를 내면 이럴 때 자동으로 통화요청 통보문이 상대방에게 갑니다. 상대방이 통화 중이어서 연결이 안 된 경우, 상대방이 통화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 이걸 통보문으로 안내해 주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한테 딱 맞는 서비스 같네요.
그런데 이런 통화요청 통보문이 한국과 미국에서 90년대에 이미 크게 유행했던 사실을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90년대말 손전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까지 무선호출기가 널리 사용됐는데요, 한국에서는 무선호출기를 삐삐라고 불렸습니다. 신호가 들어올 때 나는 소리를 따서 사람들이 이런 별명을 붙였습니다. 한국에서는 97년에 1천5백만 명, 그러니까 당시 전체 인구의 30% 가 넘는 사람들이 삐삐를 들고 다녔습니다. 저도 삐삐를 들고 다니면서 친구들과 연락하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귀한 사람들에게 큰 맘 먹고 삐삐를 선물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삐삐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내 전화번호를 남기면 일종의 통화요청 통보문이 됩니다. 수신자는 삐삐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하는 거죠. 물론 손전화가 없는 시절이었으니까, 집이나 회사, 찻집의 유선전화 또는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삐삐에 음성 통보문도 남길 수 있는 서비스가 도입됐지만, 숫자를 통보문처럼 보내는 게 여전히 크게 유행했습니다. 이용이 간단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삐삐에는 숫자10개 정도를 남길 수 있었는데요, 내 전화번호 뒤에 숫자 8282를 남기면, 내 번호로 빨리빨리 전화해라, 이런 뜻의 통보문이 됩니다.
숫자를 이용한 일종의 암호 통보문은 다양했습니다. 8255는 빨리오오, 빨리 오란 뜻이겠죠. 175는 일찍와, 1004는 천사, 0404는 영원히 사랑해의 줄임말로 쓰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재치가 번뜩이는 숫자 통보문이 널리 쓰였습니다. 재미있는 삐삐 숫자 통보문을 좀더 알아볼까요. 10288은 열이 펄펄, 9413은 구사일생, 겨우 살았다는 뜻이고, 1414는 식사식사 그러니까 밥 먹자는 뜻이 되겠죠.
손전화가 보급되면서 삐삐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하지만 삐삐에서 썼던 숫자 통보문은 지금도 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도 손전화 통보문에 재미있는 숫자 암호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국의 도감청을 피하기 위해서 숫자 암호 통보문을 쓰는 경우도 있겠네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