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씨가 29일 74살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남한, 미국, 독일 언론들은 이날 백씨의 사망소식을 주요뉴스로 보도하면서, 그의 경력과 예술세계를 크게 조명했습니다. 자세한 소식 장명화기자가 전합니다.

백남준씨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백씨는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세계가 인정하는 '20세기의 위대한 예술가 중 한 사람'입니다. ‘비디오 아트’란 텔레비전과 예술을 접목시킨 것을 말합니다. 지난 1963년 독일에서 열린 32살 백씨의 첫 개인전에서 시작된 예술분야입니다. 당시 무대에 비디오 3대와 텔레비전 13대가 설치되었고, 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갓 잡은 황소머리가 전시됐는데, 개막일에 백씨의 친구인 요제프 보이스가 난데없이 도끼를 들고 나타나 전시중인 피아노 한 대를 부숴버렸습니다.
이 후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활동무대를 미국의 뉴욕으로 옮겨 활발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앞다투어 그를 초청했구요, 베니스 비엔날레는 대상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3년에 시작된 이래, 세계 현대미술의 주요 발표 실험무대가 되어온 행사입니다.
백씨는 지난 1960년대에는 독일에서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유명했었는데요,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습니까?
백 남준씨는 지난 1984년 전 세계에 생중계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전만 해도 조국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작가였습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인류가 대중매체에 종속되어 1984년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에 바탕을 두고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1984년 아침에, 아직도 인류는 건재하며 대중매체는 인류에게 엄청난 정보와 연대의식을 선사하고 있다는 조롱 섞인 문안인사를 올린 것입니다. 당시 뉴욕과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남한의 서울을 우주중계로 연결해서 한국에서 KBS 방송으로 전해지면서, 천재적 예술가, 심지어 사상가로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이후 조국을 34년 만에 처음으로 방문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1986년에 부산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연달아 작품을 발표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백씨는 생전에 남북관계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렇습니다. 가까운 예로 백씨는 지난해 6월부터 7월까지 남한 서울에서 남북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기원을 담은 신작 ‘베를린에서 DMZ까지’를 전시했습니다. DMZ는 비무장지대를 말합니다. 이 작품은 남북합의에 따라 수거한 대북선전용 확성기에 전기를 공급하던 전원공급기를 사이에 두고, 비무장지대의 영상과 독일 베를린 장벽의 영상을 담은 두 대의 텔레비전 화면을 마주보도록 설치한 것입니다. 남북대치의 상징이었던 전원공급기를 사이에 두고 베를린의 화해의 장면이 비무장지대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었습니다.
지난 2004년에는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평화선언 2004 세계 100인의 미술가전’에 작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일각에서는 북한의 백남순외무상과 백남준씨가 ‘남’자 돌림으로 서울출신의 백남준씨와 같은 항렬이라고 주장합니다. 백씨는 수원을 단일본으로 하고 있는데다가, 백 외무상이 수원출신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장명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