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당국이 차질을 빚고 있는 장마철 피해복구 작업에 가정주부들까지 마구잡이로 동원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의 생계와 가사를 책임진 여성들이 며칠씩 집을 떠나 도로복구 작업 등에 동원되면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 안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함경남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15일 “도 여맹(사회주의여성동맹)의 지시로 각 군 여맹조직들이 가두여성(가정주부)들을 큰물피해 복구에 연일 동원시키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이달 초에 있은 제8기 3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마철 피해복구를 위한 국토관리문제가 핵심 의제로 논의됐음에도 피해복구작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도당이 내린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도 여맹과 군 여맹의 간부들이 각 지역에 나와 ‘지금처럼 어려운 시국에 가사보다 국사를 먼저 생각해야 하며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를 담당한 여성들이 한 몫 해야 한다’는 내용의 해설선전을 했다”면서 “그후 도 여맹의 지시로 각 군 여맹조직들이 저마다 ‘여맹돌격대’를 만들었는데 돈있고 힘있는 집 여성들은 다 빠지고 그렇지 못한 여성들만 포함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 “각 군에 조직된 여맹돌격대는 도 여맹이 지정하는데 따라 피해가 제일 컸던 신흥군, 홍원군 등 현지에 파견됐다”며 “가정의 생계를 돌봐야 할 여성들이 며칠씩 집을 떠나 외지에 천막을 치고 숙식하면서 힘들게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또 “신흥군에만 고원군, 금야군, 북청군, 함주군, 정평군 등 7~8개 군에서 온 여맹돌격대가 동원됐다”면서 “여맹돌격대 외에 주택건설에 동원된 군인들과 도내 각 공장 기업소에서 파견된 인원까지 합치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마스크도 없이 피해복구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 함경남도 함흥시의 또 다른 소식통도 이 날 “내가 사는 회상구역에서도 수백명의 가두여성들이 ‘여맹돌격대’ 깃발을 들고 수십 리 떨어진 리전리까지 줄지어 걸어가 저녁 늦게까지 도로복구 작업을 했다”면서 “며칠 전에도 홍원으로 이어진 령봉리 도로복구공사장에 나가 날이 어두워 (주변이)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루종일 막돌을 등에 져 날랐다”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젖먹이가 있거나, 돌봐야 할 노약자나 중환자가 있는 여성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큰물피해 복구작업에 의무적으로 동원돼야 한다”면서 “동원에 빠져 여맹 간부들의 눈밖에 나면 생활총화와 각종 회의 때 갖은 시달림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 “읍 여맹에서는 공공연히 개인 사정으로 피해복구 작업에서 빠지려면 쌀 10kg 아니면 국돈 4만원을 내라고 요구한다”며 “큰 장사를 하거나 간부집 여성들에게는 4만원이 별로 큰 돈이 아니겠지만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에게는 4만원이 너무나 큰 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 “여맹원들은 피해지역에 대한 노력동원 외에 다양한 지원사업에도 참가해야 한다”면서 “벌써 두 번에 걸쳐 피해지역에 보내는 부식물 지원이 있었고 얼마 전에는 피해주택 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에게 보내는 위문편지를 써서 바쳤다”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제 식구 먹여 살리기도 힘든 요즘 세월에 돈 없는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며칠씩 잇따라 피해복구에 동원되다보니 집안 살림이 말이 아니다”면서 “당국이 ‘여성은 꽃’이라며 여성들을 존중하라고 말은 잘하지만 실제로는 여성들을 전혀 원가가 들지 않는 ‘공짜 노력’으로 생각하고 남자들 이상으로 부려 먹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자 안창규, 에디터 박정우,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