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김일성 지우기'에 의아한 북 주민

서울-안창규 xallsl@rfa.org
2021.10.21
김정은만 천국에, 인민은 지옥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도심 보통강 강변에 조성 중인 보통강 강안 다락식(테라스식) 주택구건설사업을 현지 지도하는 모습.
연합

앵커: 북한관영 매체들은 김일성이 오랜 세월 사용했던 5호 저택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로자들을 위한 다락식 고급주택을 건설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총비서가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 안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평양시의 한 주민 소식통은 20지금 건설되고 있는 보통강 강안 다락식 주택이 김정은 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로 선전되고 있다김일성이 오랫동안 생활했던 저택이 있던 곳을 고급주택지구로 바꾸는 데 대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내가 알기에도 5호 저택은 김일성이 1950년대부터 1977년 당시 금수산의사당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가장 오래 생활했던 중요한 곳이라며 김정일이 등장한 1980년 이전에는 전국 각지의 경치 좋은 곳마다 꾸려진 호화로운 특각(별장)이 거의나 없었기 때문에 5호 저택은 김일성의 혁명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라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서 김일성의 중요한 사적이 있는 곳에 고급주택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한다김정일과 김정은이 잠깐 다녀간 곳에도 사적관이 세워지고 사적비가 건립되는데 굳이 이 중요한 자리에 다른 건축물도 아닌 주택을 꼭 지어야 하는지 정말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소식통은 또 김정은도 주민들의 반응을 우려했는지 이곳을 혁명사적관으로 꾸려 인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언론들도 이 곳이 숭엄하고 신성한 사적지라고 강조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어처구니없게도 김정은에 충성하는 일부 공로자들과 간부들이 거주할 보통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호화 주택 부지가 되어버렸다고 언급했습니다.

소식통은 1년이 되도록 아직 완공하지 못하고 있는 평양종합병원도 마찬가지라며 만수대에서 당창건기념탑을 연결하는 선은 평양시 건축의 중심축으로 만수대 언덕에서 보면 대동강 건너 당창건기념탑까지 확 트인 공간이었는데 그 중간에 종합병원을 지으면서 병원 건물이 당창건기념탑을 가리고 평양 경관의 중심축도 무의미하게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소식통은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김정일은 아니지만 김일성에 대해 향수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5호 저택 자리에 건설되는 보통강 다락식 주택을 김정은의 위민헌신의 상징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김일성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관련 평양시의 또 다른 주민 소식통도 최근 몇 년간 김일성과 그 주변에 대한 인식과 영향을 축소시키려는 시도가 한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몇 년 전에 이미 국방성 산하 일부 군사학교들의 명칭에서 수령 일가의 이름이 쏙 빠졌다김형직군의대학은 임춘추군의대학으로, 김형권통신병군관학교는 최광통신병군관학교로, 김철주포병종합군관학교는 오진우포병종합군관학교로 각각 명칭이 바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과 김정숙해군대학의 이름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김일성의 아버지, 삼촌, 동생의 이름이 붙은 곳은 다 바뀌었다아직 민간사회까지는 확대되지 않았지만 이런 식이라면 머지않아 김형직사범대학, 김철주사범대학, 김보현대학의 명칭도 달라질 것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소식통은 몇 년 전 외국인들의 필수 참관지인 만수대창작사의 정문 현판에 있던 3대 장군(김일성, 김정숙, 김정일)의 초상화가 사라졌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군사학교의 명칭에서 수령 일가의 이름을 빼거나 초상화를 없애는 것은 최고지도자의 허락이 없이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계속해서 아주 서서히, 그리고 교묘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김일성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정상적으로 생각해보면 3대 세습의 손자가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잊지 않고 더욱 신봉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은 정말 놀랍고 이상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자 안창규,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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