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 눈물로 그린 무지개‘의 주인공 장길수

매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 여덟 번째 순서로 지난 2001년 6월 일가족 6명과 함께 중국 베이징 주재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 사무소에 진입해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뒤 결국 남한으로의 망명까지 성공한 장길수 군의 이야기입니다. 담당에 이진서 기자입니다.

1984년생으로 올해 22세인 장길수 군의 진짜 이름은 장창수입니다. 본명보다는 중국에서 신변안전을 위해 사용한 가명인 장길수로 세상에 더 잘 알려진 그는 이제 남한 생활 4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길수 군은 탈북하기 전까지 함경북도 화대군 길주에서 살았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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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그린 무지개'에 실린 그림 중에서 길수 군이 국경을 넘다가 잡힌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

장길수: 저는 99년 1월 달에 탈북 했고, 중국에서 한 2년 정도 연길과 대련 쪽에서 숨어 살다가 남한에 온 장창수입니다.

길수 군은 중국에서 숨어 살다가 남한 행을 위해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 건물에 진입한 것은 당시 중국이 올림픽 유치 경쟁을 벌여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터였고 또 그곳의 경비는 다른 나라들의 베이징 주재 외교공관보다는 덜 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장길수: 유엔은 아무래도 난민을 보호하고 구원해 주니까 ...그때 7명이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유엔 대표부 사람이 잘 만나려고 하지도 않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받아 달라는 성명서를 읽고, 같이 진입했던 일본 기자가 사진을 막 찍고, 언론에 공개가 되니까 그때서야 대표부 사람이 나와서 면담식으로 얘기를 하게 됐습니다.

길수군 가족은 유엔 사무소 진입 성공 후에도 남한 행을 위해 사생결단의 최후 수단까지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장길수: 그 사람 앞에서 미리 준비해간 밧줄하고 쥐약을 내놓고 우릴 받아주지 않으면 여기서 죽겠다고 그런 식으로 앉아서 농성하고 하니까 그다음에는 유엔 대표부 사람이 나와서 얘기도 하고 그곳에 머물 수 있게 됐습니다. 한 3일인가 있었습니다.

남한 입국 전 중국에서 공안들에 쫓기며 숨어 살며 지낸 이야기를 묶어 책으로 펴낸 ‘눈물로 그린 무지개’는 장길수 군이 남한에 입국하기 전 중국 내 탈북자들의 생활을 그대로 전해주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길수: 전부 일기만 아니라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한테 편지 썼던 것이랑 모은 것으로 중국에 있을 때 (남한에서)책이 출판이 됐습니다. 유엔 대표부 들어가기 1년 전에 책이 출판돼서 북한에서도 그런 사실을 알았고 그런 이유 등으로 중국 생활이 더 위험했었지요. 저희 실정이라든가 탈북자들의 실정 등을 그냥 말로만 해서는 알릴 방법이 없고 해서 글이랑 그림을 그려서 책으로 출판을 하게 됐습니다.

길수 군은 같은 또래의 남한 청년들과 경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심적 부담도 많지만 새로운 인생에 대만족 이었습니다. 그는 모자란 만큼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장길수: 저희 탈북자들한테는 거의 천국이나 다름이 없죠. 자유가 다 보장이 되고...예전에는 공안을 보면 무서워서 피하고 했는데... 처음에는 남한 경찰들을 봤을 때 중국 경찰들 생각도 나고 그랬습니다. 자신감이 좀 부족하죠. 여기 사람들과 비교하면요. 중국에서 남한 오기 전에는 가서 성공해서 잘살아야지 하는 기대가 많이 변해서 올 때 하고는 좀 많이 다르니까 자신감을 잃고 많이 다르죠.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길수 군은 한해를 쉬고 올해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됐습니다. 입학 준비를 하면서 요즘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길수군은 이제 앞으로 4년간은 남한의 청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장길수: 북한 사람은 거의 재외국민특별전형으로 이런 한국의 일류 대학을 갈 수 있으니까요. 서강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전공은 사회학과하고, 외교 정치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정확히 어떤 것을 전공할지는 들어가서 생각하려고요. 저는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해서 돈 벌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회단체나 비정부 민간단체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한편 남한에서 친형과 단둘이 현재 생활하고 있는 장길수 군은 자신이 힘들게 살아봤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사회에서 소외받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 자신의 계획을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