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 퓨마 PC방 사장 탈북자 이근혁

200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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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시간입니다. 오늘은 올해 24세인 탈북자 이근혁 씨의 이야기입니다. 현재 대학생이기도한 이 씨는 최근 탈북자 3명과 동업으로 PC방 즉, 많은 컴퓨터를 마련해 두고 영업을 하는 사업을 시작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담당에 이진서 기자입니다.

현재 남한 고려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탈북자 이근혁 씨는 지난 1981년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89년 아버지가 군에서 제대를 하면서 함흥 혜산구역으로 내려가 탈북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 후 아버지는 이 씨가 인민학교 4학년 때인 92년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생활이 너무 어려워져 결국 98년 탈북을 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이근혁: 저는 정치적인 것 보다는 워낙 굶주리고...미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 끼를 때울까 이런 생각밖에 없었고, 그런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어머니가 탈북을 하자고 했고 자연스레 동의를 하게 됐습니다.

탈북한 뒤에는 보통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3년여를 지내며 남한행의 길의 찾는 것과는 달리 자신은 운 좋게도 중국생활 일주일 만에 남한행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근혁: 어머니하고 계획을 세운 것이 북한에 있을 때 몰래 남한 방송을 들으니까 대부분 대사관을 통해서 남한으로 넘어간 것 같아서 대사관을 찾아 갔었는데 거기서 망명 신청이 안 되더라고요. 다 알아서 가라 이런 식으로 대화가 오가고. 그래서 거기서 나와서 청진항으로 갔습니다. 바다로 나갔었는데 거기서 운 좋게 한국 배를 만나서 몰래 밀선을 타고 부산항에 입국한 겁니다.

그는 부산항에 도착한 뒤 밀입국한 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남한 기관의 조사를 받았고 그 뒤 여느 탈북자와 같은 정착지원금과 임대주택 등의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탈북자 이근혁 씨는 어느덧 햇수로 남한 생활 7년째를 맞았지만 자신의 고향인 북한에 대한 생각은 늘 가슴에 품고 산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근혁: 저희는 솔직히 말하면 죄 지은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에 있는 많은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아무 얘기도 안하고 ... 그 친구들한테 죄를 짓는 마음으로 남한까지 왔고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잘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한국 사람들 보다 꿈이 크지 않나 생각하고요.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는 영어나 컴퓨터 등 남한 사람에 비해 너무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을 느낀 다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근혁: 북한에 있는 친구들과 같이 사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솔직히 통일이 되면 북한에 친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저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발전된 시대에 맞게 갖춰진 지식이나 기술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제 목표는 통일이 되게 되면 북한에 조그만 땅이나 사서 같이 농사나 지으면서 아파트 같은 것 하나 지어서 그곳에서 같이 사는 겁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제 개인 적인 꿈입니다.

그는 또 최근 컴퓨터 54대를 갖다놓고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사업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이근혁: 복학하는 3월까지는 시간이 있어서 뭘 할까 하다가 대리운전을 했어요. 대리운전 하다보니까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 져서 PC방에 자주 들어갔습니다. 그곳에 있다가 손님 있다고 하면 나가서 손님 데려다 주고 그랬는데 그러면서 PC방을 하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동업해서 자그맣게 PC방을 냈습니다.

탈북자 친구 3명과 동업으로 시작한 컴퓨터 PC방의 이름은 날렵하고 빠른 퓨마라는 동물 이름을 붙여 ‘퓨마 PC방’이라고 합니다. 이 씨는 또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 그런대로 잘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돈만 벌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근혁: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북한 사람들을 평가 할 때도 저 사람 보니까 북한사람을 다 좋은 사람이겠구나, 착하겠구나, 북한 사람들 의리가 있겠구나, 이런 인식을 심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실제로 탈북자 이근혁 씨는 시간이 허락될 때면 자신의 처지보다 못한 노약자나, 지체부자유자들을 돕는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근혁: 제가 지금까지 말한 많은 꿈들은 어쩌면 너무 이기적 꿈들에 가깝다고 제가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이기적인 생각만 하다보니까 왠지 가슴이 허탈하기도 하고 그래서 허탈감을 채우려고 자원 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자원봉사를 한두 번 나가게 되니까 보람도 되고 이래서 내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간간히 하게 되고요. 그런 것이 너무 재미가 나서 자원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탈북자 이근혁 씨는 이제 3월이면 대학으로 돌아갈 계획이며 앞으로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게 됩니다.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싶다며 욕심스럽게 살고 있는 올해 24세의 이 씨는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끔씩 주변의 어려움도 함께 나누는 그런 청년으로 남한에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진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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