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 탈북자지원 활동가로 변신한 탈북자 김용화

매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시간입니다. 오늘은 탈북자 김용화 씨의 이야기로 김 씨는 남한 국적을 받기까지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일본의 구치소와 외국인 수용소만 16곳을 거쳐야 했으며 남한정부로부터 탈북자로 인정받기 위한 재판만 22차례나 받았습니다. 김용화 씨는 현재 남한에서 중국 내 탈북자를 지원하는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담당에 이진서 기자입니다.

올해 54살 탈북자 김용화 씨는 평양시 관내에서 태어나 함경남도 함흥철도국 단천 기관차대에서 철도 승무원으로 일하다 열차사고에 연루돼 1988년 아내와 세 자녀를 남겨두고 단신으로 탈북 했습니다.

김용화: 1970년도에 북한 인민군에 입대해서 76년에 인민군 소위로 임관하고, 82년 중위로 제대를 했습니다. 그 이후 사회안전부 교도소와 철도 안전부를 거쳐서 대위로 근무하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2호 열차 전복사고가 있는데 그 열차가 전복 사고를 일으켜 그 책임을 지고 탈북 했습니다.

김 씨는 자신이 죽을 곳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마음에서 무작정 탈북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기구한 운명이 꼬이게 된 것은 북한 땅을 넘어서면서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김용화: 북한을 넘어 설 때 권총을 가지고 넘어 섰습니다. 북한은 사회안전원이라고 하면 실탄 14발씩을 전부 가지고 있는데(탄창7발, 예비탄창7발) 그것이 그 후에 저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지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무기를 갖고 탈북을 했다고 해서 북한과 중국은 공조 하에 김용화 씨 수배 전단을 기차역과 버스 정류소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붙여놓고 김 씨를 잡는데 노력했었다고 합니다. 죽을 곳을 찾겠다고 중국 땅을 밟았지만 국경을 넘으면서 그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뀌게 됐다고 합니다.

김용화: 그날부터 걷기 시작한 것이 장백산에 들어가서 길을 잃은 적도 있고...그때부터 제가 거지 생활을 3년 했습니다. 그냥 걸어서 통화에서 연변, 연변에서 심양, 심양에서 대련, 거리로 하면 2만 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는데...

그리고 김 씨가 중국에서의 거지생활 끝에 남한행을 모색하다 찾은 곳이 베트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탈북자 김용화 씨는 불법체류자로 11개월간의 감옥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주재 남한 외교공관을 찾아 구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김용화: 들어가서 좀 살려 달라. ..그러니까 일단 조서를 쓰라고 했는데 제가 50이 넘도록 밥을 그렇게 많이 먹어 보기는 처음입니다. 베트남에서 주는 밥을 제가 일곱 그릇을 먹었습니다. 하도 허기가 차서... 그리고는 글을 쓰기 전에 제가 밥에 취해서 쓰러졌습니다.

그는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과 베트남 다시 중국 등을 떠돌면서 남한행의 길을 찾다가 지난 95년 6월 0.5톤의 조각배를 타고 산둥성을 출발해 70여 시간에 걸쳐 서해바다를 건너 남한 밀입국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가 중국에서 공안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뇌물을 주고 만들었던 가짜 중국 거민증으로 인해 탈북자 김용화 씨는 중국 국적자로 간주돼 남한 정부로부터 강제 퇴거 명령을 받았고 2년여의 지루한 재판 과정에 들어갑니다. 김씨는 그 과정에서 외국인 불법체류자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고 다시 중국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98년 4월 일본으로 밀항 또다시 일본 오무라 외국인 수용소에서 2년간 수감 생활을 하게 됩니다.

김용화: 파도가 보통 4.5미터 까지 칠 때니까 배라고는 경비정한척 뜨지 않을 땐대 15마력짜리 배를 타고 제주 해협을 빠져서 일본으로 들어가는데 딱 3일 걸렸습니다.

탈북자 김용화 씨의 이야기는 일본 감옥에 있을 당시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데 그곳에서 김씨가 쓴 책이 바로 ‘한 탈북난민의 고백’ 이란 제목으로 2002년부터 일본에서 판매가 된 것입니다.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넘겨진 탈북자 김용화 씨는 그 뒤 중국정부가 그의 위조신분을 확인해 줌에 따라 탈북한지 14년만인 2002년 4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남한 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김용화: 저는 주민등록증을 받을 때 기뻤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쓸쓸했습니다. 이것 한 장을 받으려고 13년 동안 이렇게 비극적으로 돌아다니고 7년이란 세월을 감옥 생활을 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재판만 34번을 받으면서 분단 비극과 신분 때문에 어려운 세월을 살았는가.

탈북자 김용화 씨는 현재 일본에서 출판한 자서전의 수입금으로 제3국의 탈북자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김용화: 제가 한국 땅에서 당당한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기 까지가 한 15년이란 세월이 걸렸기 때문에 그 고통 특히 감옥에서의 고통, ?기는 고통을 너무도 많이 체험을 했고, 또 제가 한국과 일본 감옥에 있을 때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도움을 받고 살아 왔기 때문에 저도 적은 힘이나마 내 민족 탈북자들을 도와줘야 되지 않겠는가...

탈북자 김용화 씨는 지금까지 자신이 남한입국을 도운 탈북자의 수가 130여명이 된다면서 죽는 그날까지 북한인권을 위해 일할 것이며 또한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과 고통과 슬픔 그리고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진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