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7.1 경제 관리 개선 조치를 보완하는 금융개혁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남한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박석삼 박사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7.1 조치 이후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북한의 물가상승과 기업소의 자금압박을 해결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은행제도를 개편했거나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김연호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북한의 ‘7.1 경제 관리 개선 조치’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가지 평가가 나왔는데,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까?
김연호 기자: 박석삼 박사는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가 시행된 것은 북한경제를 지탱해온 계획경제 체제의 기본 틀이 공식적으로 해체됐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습니다. 박 박사는 우선 7.1 조치를 통해 기업소가 ‘번 수입’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달라진 환경에서는 기업소들이 어떻게든 많이 만들어 팔아서 이익을 남기려 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미리 정해주는 생산계획은 무의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번 수입’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이 달라지고 따라서 노동자의 씀씀이도 달라지기 때문에 국가전체의 소비규모를 미리 계획한다는 것도 사실상 어렵게 됩니다.
이렇게 국가전체의 생산과 소비규모를 계획할 수 없다는 것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박 박사는 분석했습니다.
종합시장을 도입한 것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가 가져온 중요한 변화인데, 박 박사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김: 우선 북한에서 개인상공업이 허용됐다는 것 자체가 배급제라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한 축이 무너졌다는 것으로 박 박사는 보고 있습니다. 종전에는 국영상점에서 국가가 상품의 공급량과 품질 그리고 가격 등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지만, 종합시장에서는 이런 통제가 사실상 작동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계획에 입각한 경제운영이 한계에 이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북한이 7.1 경제 관리 개선 조치에서 시장경제의 요소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과연 진정으로 시장경제로 전환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전문가들도 많은데요.
김: 그렇습니다. 박 박사도 북한이 개인상공업을 허용했더라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북한 헌법에서 금지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이것은 헌법개정과도 관련된 문제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박 박사는 북한이 개인상공업을 계속 확대해서 경제개혁을 추진해 나갈 뜻이 있다면, 개인에게 생산수단의 소유권은 아닐지라도 사용권만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리고 만약 북한이 이런 결단을 내린다면, 시장경제의 방향으로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박 박사는 전망했습니다.
7.1 조치이후에 북한에서는 물가상승이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김: 그렇습니다. 북한에서는 전통적으로 기업소나 기관이 조선 중앙은행에서 돈을 받아 노동자에게 임금을 나눠주고, 노동자들은 이 돈을 국영상점에서 물건을 사는데 쓰거나 은행에 맡겨서 결국 중앙은행으로 돈이 다시 돌아오는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게 되면서 돈이 중앙은행으로 다 못 돌아오는 사태가 벌어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7.1 조치로 수십 배 인상된 임금을 주기 위해 오히려 중앙은행에서 나가는 돈은 더 많아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리면서 물가도 덩달아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박석삼 박사는 북한의 물가 상승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김: 박 박사는 북한당국이 물가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금융개혁 조치들을 7.1 조치 속에 집어넣지 않은 것은 의외라면서, 외부에 공표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적으로 은밀히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지난 2002년 북한 무역성 김용술 부상이 신탁은행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 설립됐다고 언급한 사실로 미뤄볼 때, 북한이 은행제도를 개편했거나 추진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박 박사는 또 이른바 독립채산제로 인해 기업소들이 심한 자금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북한에서도 상업은행을 세워서 기업소에 자금을 대출해주는 체제가 확립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