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김정은 북한 총비서는 지난달 말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전체회의 개막에 맞춰 장문의 서한을 이 단체에 보냈습니다. 이는 조총련을 활용한 대외 선전과 대북투자 확보를 염두에 뒀다는 게 일본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이상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달 28일 조총련 제25차 전체회의 개막에 맞춰 참가자들에게 보낸 축하 서한에서 조총련 부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자고 밝혔습니다.
그는 조총련 중시는 북한의 영원한 국책이라며 조총련을 소중히 여기고 백방으로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서한은 2018년 제24차 조총련 전체회의 때도 전달됐지만 이번엔 그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총련계 조선대학교 최고학부 교원을 지낸 박두진 코리아국제연구소 소장은 지난 5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그동안의 서한은 간단하게 큰 방향성을 제시해 왔는데 이번에는 각 분야에 대한 세세한 지시가 있었다며 이런 구체적인 서한은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도 지난 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조총련 관계자에 따르면 이 서한이 전체회의에서 읽혀졌는데 다 읽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마키노 기자: 이를 두고 김정은 총비서가 조총련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박두진 소장은 김정은 총비서가 이번 서한에서 세세한 지시를 내린 것은 앞으로는 김정은 총비서의 지시를 따르라는 '김정은의 조총련'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총련이 해외에서 북한을 선전하는 조직으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세세한 내용의 서한을 통한 관심으로 조총련을 치켜세워보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두진 소장:돈을 얻어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조총련이 힘을 잃게 되면 대외선전, 대남사업 등에 큰 지장이 있겠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총련 입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단체가 되달라는 겁니다.
조총련 사안에 정통한 일본 도쿄에 있는 사업가 김 모씨는 8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김정은 총비서의 이번 서한은 대북제재로 외국인의 대북투자가 위축된 가운데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조총련 사업가들의 투자를 받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더 어려워진 상황에서 북한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재중동포인 조선족, 재일동포인 조총련을 주로 구성하는 '조선적'이라며 특히 조총련의 건실한 상공인들을 겨낭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조선적'은 일본에서 무국적자로 분류되는 사람들로 현재 2만 5천명이하로 숫자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마키노 기자는 서한 중 현실적이지 않은 내용이 있어 조총련 내부에서는 실망의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마키노 기자: 예를 들면 "일본 정부가 하고 있는 북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활동에 대한 제재 조치를 해제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투쟁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고 조총련 재일교포 여성분들한테 "치마 저고리를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실적이지 않고 개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지시하는 내용이라서 불만도 많다고 합니다.
박두진 소장도 한국 국적으로 바꾸면 민족반역자라고 비난했던 조총련이 지금은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 국적은 물론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까지 포섭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치마 저고리를 입고 민족 전통음식을 먹으라는 지시에 조총련 동포들이 비웃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그는 또 민족성을 강조한 김정은 총비서의 서한과 달리 지금 조총련 사회는 일본 사람과의 결혼 증가 등 일본 사회에 동화하는 것이 대세라고 밝혔습니다. 이미 이민 5세까지 나왔고 3,4세 뒤로는 한국말도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박두진 소장: 일본의 동포사회 구조가 많이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변하면 조직도 변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조총련 사안에 밝은 김 모씨는 대북제재로 북한에 대한 송금이 일체 막혔고 북일 합영사업에서 이득을 본 조총련 상공업자가 드문 게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일본 당국이 북한과 사업을 하는 기업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고 실제로 불이익을 주고 있다며 김정은 총비서가 조총련을 통해 투자확보를 바라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로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조총련의 입지가 일본 사회에서 계속 좁아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자 이상민,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