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정전70주년] 북한군 유해, 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나?

서울-목용재 moky@rfa.org
2023.07.26
[한국전 정전70주년] 북한군 유해, 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나? 한국 경기도 파주 적성면에 위치한 ‘북한군 묘지’.
/RFA PHOTO

앵커: 한국 경기도 파주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북한군 유해를 안치해 놓은 ‘북한군 묘지가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북한군 유해를 인수하지 않아 이런 묘역이 조성돼 운영되고 있는 것인데요.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북한 당국이 왜 북한군 유해를 수습해 가지 않는지 조명했습니다.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신범철 한국 국방부 차관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25일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한국군 유해 7위를 인수했습니다. 한미 양국은 정전협정 이후 현재까지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 발굴 및 인수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희생으로 나라를 지켰기에 유해가 어디에 있든, 이들을 고향으로 모셔 국가차원의 예우를 다하려는 것입니다.

 

반면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북한군 유해 인수에 관심을 보인 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위치한 북한군 묘지가 조성된 이유입니다.

 

한국 정부, 인도적 차원서 북한군 묘지 관리지난 5년간 1억여 원 투입

 

6099㎡ 면적의 북한군 묘지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북한군 유해들이 안치돼 있습니다. 지난 19966북한군-중국군 묘지라는 명칭으로 1묘역이 처음 조성됐고 2000 5월에 추가로 2묘역이 들어섰습니다. 해당 묘역에 함께 안장됐던 중국군 유해가 지난 20143월부터 2022년까지 모두 9차례에 걸쳐 송환되면서 지난 20184북한군 묘지로 명칭이 변경됐습니다.

 

한국 국방부와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 북한군 묘지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북한군 810구와 남파 무장공비 및 표류 사체 등 61구가 안장돼 있습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북한군 묘지는 제25보병사단 예하의 1개 대대가 이를 관리하고 있으며 이에 투입된 예산은 지난 2018년부터 최근 5년간 1억여 원, 79000달러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찾아간 북한군 묘지 현장은 잡초가 무성했고 일부 비석이 손상돼 있는 등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해당 묘역에 대한 별도의 관리 인원을 편성하지 않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최근 5년 동안 한 해 평균 16000달러 가량의 비용을 투입해 북한군 묘지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적군인 북한군의 묘역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이유는 적대행위의 결과로서 사망한 그 국가의 국민이 아닌 자의 유해는 존중돼야 한다’(제네바협약 제34)는 국제법의 준수 및 인도적 배려 차원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말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쟁 중 인도적 사안의 경우 교전국이라도 반드시 보살피게 돼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이렇게 장기간 다수의 인원을 예우하는, 집단적인 묘지를 조성해 관리하고 있는데, 이례적인 것으로 봅니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한국 정부가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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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묘지’에 안장돼 있는 무명 북한군. /RFA PHOTO

 

, 군 당국 간 접촉 때 유해의 자도 꺼내지 않아사실상 방치

 

북한군 묘지가 유지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 당국이 유해를 인수할 의사가 없다는 점입니다. 북한 매체에서도 한국전쟁 당시의 전사자 유해를 북한 당국이 인수해 갔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에 북한군 유해가 사실상 버려져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북한 군 당국과 여러 차례 실무 협상에 참여한 바 있는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인수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북한은 1990년대 초 남북 군 당국 간 접촉이 시작됐을 때부터 북한군 유해의 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금전적인 대가를 받아내거나 정치적 협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미군 유해 송환에 관심이 컸다는 게 문 센터장의 말입니다. 실제 미북은 협상을 통해 1990년대부터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문 센터장은 지난 2007 11월 평양에서 열린 2차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국 측이 미군 유해 송환의 전례를 근거로 한국군 유해 송환을 요청하자 북한이 관심을 보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실제 남북은 이 회담에서 한국전 당시의 유해 발굴 추진 대책을 협의 및 해결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후 열린 후속 실무회담에서도 유해 발굴 및 송환과 관련한 협의가 이어졌지만 북한군 유해 발굴 및 송환과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는 게 문 센터장의 설명입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11) 국방장관 회담에서 합의문이 나오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2007) 12월 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렸어요. 김영철이 왔죠. 당시 한국은 어떻게든 유해를 발굴해서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북한은 북측 유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북한은 (한국측 유해를) 우리가 준비해 놓았으니 얘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 유해 인수하지 않는 이유?...“정치적 활용도 고려

 

한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국전쟁 당시 유해를 인수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정치적 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특히 북한이 정전협정일을 전승절로 포장,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유해를 인수해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는 겁니다.

 

또한 북한군 유해를 인수할 경우 돈벌이나 협상 수단으로 활용할 한미 유해를 조건 없이 송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입니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인권센터장은 북한군 유해 인수는 곧 북한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분석했습니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인권센터장: 한국전쟁 당시 북한 군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는 얘기인데, (유해 인수는) 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됩니다. 이는 곧 지금까지 방치했다는 것도 인정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전승이라는 것은 북한 정치체제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를 훼손하거나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노출 및 인정하는 쪽으로는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한국전쟁 유해는 아니지만 북한이 유해를 인수해간 사례가 드물게 있습니다. 19969월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과 19986월 강원도 양양 잠수정 침투 사건 당시 사망한 유해들입니다.

 

북한은 정전협정 이후부터 수많은 무장 간첩 남파 및 대남 도발을 감행하면서도 이 같은 사실을 전면 부인해왔습니다. 하지만 1996년과 1998년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유해를 인수해 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히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의 경우 이례적으로 사과까지 하며 유해를 인수했습니다. 정전협정 이후 북한이 무장공비의 유해를 인수해 간 사례는 당시가 처음이었습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우상화 및 대내 선전에 활용할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당시 사망한 24명의 유해는 모두 송환해 갔습니다. 그 이후 북한 내 특집 프로그램을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며칠 잠을 못 잤고 영웅들의 유해를 모두 송환해 와야 된다는 결정을 내려 송환했다는 대목이 나와요.

 

1998년 강원도 양양 잠수정 침투 사건의 경우 남북 경협 및 교류가 본격화 되던 상황이 고려돼 유해를 신속하게 인수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정주영 당시 현대 명예 회장의 ‘2차 소떼 방북을 앞두고 있었고 금강산 관광 사업 논의도 진행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윁남(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북한 군 유해도 지난 20029월 수습해 간 바 있습니다. 이들은 인민군 영웅열사묘에 묻혔고 북한 당국은 이들을 윁남 인민의 반미 항전에 참가해 싸우다가 희생된 열사로 대내 선전에 활용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최고지도자의 우상화에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 정치적인 협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 등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해 상황에 맞게 유해를 인수해가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합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는지 여부가 유해 인수의 중요한 판단기준이라며 정치적 가치라는 것은 경제적 가치로도 연결 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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