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주군 출신 탈북민 “핵실험 이후 주민건강 악화·환경파괴”
2023.09.20
앵커: 제20회 북한자유주간을 맞아 함경북도 길주군 출신 탈북민들이 풍계리에 핵실험장이 들어선 이후 주민 건강이 악화되고 환경이 파괴되는 등 피해가 잇달았다며 증언에 나섰습니다
서울에서 이정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당국이 지난 2006년에서 2017년까지 6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한 풍계리 핵실험장.
지난 2011년 탈북한 김순복(가명) 씨는 20일 국제PEN망명 북한센터가 주최한 ‘북한의 핵실험 피해사례’ 행사에서 1985년 결혼 이후 탈북할 때까지 함경북도 길주군에 살면서 풍계리에서 흘러내려오는 남대천 물을 식수로 이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풍계리에 핵실험장이 들어선 후 결핵, 피부염, 관절염 환자들이 늘어났고 병명이 명확치 않은 경우 이른바 ‘귀신병’에 걸린 사람들이 발생하곤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순복 씨: 어느 때부터 류머티즘을 비롯해 환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결핵 환자와 피부염 환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 밖에 진단이 명확치 않은 시름시름 앓는 사람들을 가리켜 귀신병에 걸렸다고 말을 했고, 무당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동네 어르신은 물론 어린 아이들도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길주군에서 나고 자란 이영란 씨는 한국에 오고 나서야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피폭이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풍계리에서 내려오는 물을 식수로 사용한 길주군 주민 대부분이 피폭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핵실험 후 병원에서 결핵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이후 4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에 더해 지난 2014년 결핵 진단을 받고 2018년 사망한 아들의 사례를 공유하며 아들이 평양에서 치료를 받으려 했으나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영란 씨: 평양 병원에 갔는가 물었더니 (아들이) 못 갔다 합니다. 왜 못 갔는가 하니까 호위 사업과 관련해서 길주군 출신 간염 환자, 결핵 환자의 일체가 평양에 한 발자국도 들여 놓지 못한다고 증명서 조차도 내주지 않는다 합니다.
지난 2011년 탈북할 때까지 길주군에 거주한 남경훈(가명) 씨는 핵실험장이 세워지기 전 남대천에는 산천어가 많았지만 그 후에는 대부분이 없어졌다고 증언했습니다.
남경훈 씨: 핵실험장이 세워지기 전 남대천에서 산천어를 잡아 어죽을 쑤어 먹고, 친구들과 나눠 먹던 소중한 기억들이 아직도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물맛 좋기로 소문 났던 저의 고향은 이제는 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 김 부자의 파렴치한 세습정권 유지를 위해 핵실험장으로 전락했고, 피폭으로 식수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큰 위험 지역으로 되었습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신화 한국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격려사를 통해 한국 통일부가 올해 탈북민 대상 피폭 검사를 재개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하며 해당 문제가 지속적으로 공론화되고 조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풍계리 외에 공개되지 않은 북한 핵시설에서의 방사성 물질 유출 가능성을 우려하며 이는 북한 주민의 건강 뿐 아니라 환경에도 재앙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신화 한국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풍계리 뿐만 아니라 다른 드러나지 않은 북한의 핵실험 및 개발 관련 장소들에서도 벌어져 왔을 수 있는 방사성 물질의 유출과 오염수 문제는, 북한 주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 외에도, 앞으로 여러 세기에 걸쳐서도 회복되기 어려운 환경 재앙이 될 우려가 큽니다.
앞서 문재인 한국 정부는 지난 2017년과 2018년 풍계리 인근 출신 탈북민 가운데 40명을 대상으로 피폭 검사를 실시해 모두 9명, 약 22.5%의 검사 대상자들에게서 피폭 흔적을 발견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를 통해선 핵실험에 따른 인과관계나 별도 치료가 필요한 피폭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당시 한국 정부의 입장이었습니다.
이후 윤석열 정부는 앞서 이뤄진 조사의 표본 수가 적었고 대조군을 설정하지 못해 조사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을 수용해 지난 5월부터 피폭 검사를 다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올해 함경북도 길주군과 인근 지역 출신의 탈북민 중 총 89명을 대상으로 피폭 검사와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결과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에디터 목용재,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