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 말투 ‘파이팅’ 사용 금지”… 북, 청년층 문자 집중단속
2023.12.01
앵커 : 북한 당국이 남조선 괴뢰의 말투를 척결하겠다며 손전화로 ‘파이팅’이라는 문자를 주고받는 청년들 단속에 나섰습니다. ‘파이팅’은 힘을 내라는 응원의 말로 남한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한국식 영어 표현입니다. 북한 내부 소식 손혜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주민들의 사상적 이탈을 우려한 북한 당국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2020.12)하고 한류 단속과 통제를 강화한 지 올해, 3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한국 노래와 춤은 물론 한국식 말투까지 반동 문화의 범주에 포함시켜 처벌 수위를 높여 온 것인데, 최근 또다시 남한식 영어표현 ‘파이팅’이라는 문자를 집중 단속하고 있습니다.
평안북도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1일 자유아시아방송에 “그제(29일) 신의주 역전 광장을 지나가다 안전원으로부터 손전화에 있는 통보문(문자 메시지)을 검열당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 이후 사법 당국이 거리에서 불시에 젊은이들 위주로 손전화를 회수해 남조선 영화나 드라마 파일이 있는지 단속한 적은 있지만, 통보문 내용을 전부 검열한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 “안전원들이 주로 젊은이들의 손전화를 단속하는 이유는 통보문을 검열해 ‘파이팅’이라는 괴뢰 말투 사용자를 잡아내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종일 안전부 단속에 몇 명이 걸렸는지 모르지만, 검열 차례를 기다리며 스무 살이 갓 넘어 보이는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가 동무에게 ‘파이팅’이라는 통보문을 보낸 것이 단속돼 안전부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이 소식통은 증언했습니다.
사법당국에 단속된 청년들은 시범 꿰미(본보기)로 처벌될 경우,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위반으로 노동단련대 6개월 형까지 처벌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이와 관련 평안남도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지난달 30일 “은산군에서 지방선거가 끝난 다음날(27일)부터 안전원들이 대학생들과 청년들 대상으로 길거리에서 손전화를 검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손전화 검열은 주고받은 통보문을 확인해 괴뢰 말투인 ‘파이팅’을 사용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며 “요즘 청년들 사이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파이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에선 ‘파이팅’과 같이 ‘힘내자’는 의미로 당과 수령을 위해 '혁명적으로 살며 투쟁하자'는 선전구호가 많이 사용됐는데 북한 정권이 아닌 친구나 연인끼리, 또는 운동경기에서 응원하는 뜻으로 사용되는 ‘파이팅’은 남조선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표현입니다.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12)과 청년교양보장법(2021.8)을 제정하고 청년들에 대한 한류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면서 북한에서는 ‘오빠야’, ‘남친’ 등 남조선 말투로 대화하는 경향은 대부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식통은 그러나 “말이 아닌 개인들이 손전화로 주고받는 통보문(문자 메시지)에서는 ‘오빠야’, ‘ㅋㅋㅋ’, ‘따랑해’ 등 남조선 영화에서 나오는 말을 몰래 사용하고 있다”면서 “사법 당국이 아무리 손전화를 검열해도 청년들 속에 남조선 말과 말투를 완전히 없애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북한에서 청년들은 남한식 말투와 표현이 친구나 연인 사이 우정과 사랑의 감정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한편 북한이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3장(반동사상문화의 시청, 류포 금지) 24조에는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은 괴뢰말과 글, 창법을 사용하지 말며 괴뢰 말투로 된 통보문을 주고받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