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 “최은희, 분단의 비극적 산물”

서울-노재완 nohjw@rfa.org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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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북한 피납 6년째에 상봉한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김정일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사진은 북한 피납 6년째에 상봉한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김정일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공

지난 1986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던 영화배우 최은희 씨가 지난 16일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탈북자들은 최은희 씨의 납북 사건을 분단의 비극적 산물로 평가했습니다.

서울에서 노재완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원로 영화배우 최은희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한국에서는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탈북자들도 안타까움을 나타냈습니다. 30대 이상의 탈북자들은 대부분 고인을 기억했습니다.

박소연 탈북자: 최은희 씨가 북한의 유명한 인민배우 최창수랑 함께 출연한 영화 ‘소금’이 기억이 납니다. 최은희 씨가 북한 영화에 등장하면서 우리는 여태껏 보지 못한 신식 여성을 봤습니다. 얼굴도 서구적으로 생긴데다 연기도 남달랐습니다.

탈북자들은 최 씨가 북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북한의 영화 수준도 한 단계 도약했다고 말합니다.

평양 출신의 탈북자 이나경 씨는 최 씨가 영화에서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나경 탈북자: 처음에는 선글라스를 자주 껴서 못 생겨서 그럴 줄 알았어요. 연기는 대단했죠. 북한 배우들에게 한 수 가르쳤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연기 하나는 정말 잘 했습니다.

최 씨는 지난 1978년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됐습니다. 최은희 납치 사건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위원장은 최 씨와 신상옥 감독을 납치한 뒤 ‘신필름’이라는 영화제작소를 만들어 전폭적인 지원을 했습니다.

최은희 (생전 육성): (김정일은) 북한 영화계의 낙후된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북한 영화를 활성화 시키고 국제영화제에도 내보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특별 대우에도 불구하고 최 씨는 지난 1986년 신상옥 감독과 함께 오지리(오스트리아) 빈에서 자유를 찾아 서방으로 탈출했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두 사람은 1999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들은 북한에서 가져온 녹음테이프와 사진들을 공개하는 등 납치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당시 북한 당국은 최은희 씨가 납치된 것이라 아니라 예술인으로서 꿈을 펼치기 위해 자진 월북했다고 선전했습니다.

배우로서 화려한 생활을 했지만 누구보다 분단의 쓰라린 아픔을 경험했던 최 씨. 탈북자들은 최은희 씨의 납북 사건을 분단의 비극적 산물로 평가했습니다.

박광일 탈북자: 최은희 선생님은 분단의 현실을 경험했던 분입니다. 생을 마감할 때도 분단의 아픔을 안고 가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고인도 2007년에 출간한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에서 자신은 분단국의 여배우로서 조국의 비극에 희생양이 되는 경험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2006년 신상옥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최 씨는 지난 16일 자택 인근 병원에서 향년 92세로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지난 2010년부터 신장 질환을 앓아 오랜 기간 투병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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