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미북관계 관여하는 한국에 불만표출…중재 필요없단 메시지”

서울-목용재 moky@rfa.org
2020.10.29
seohoon.jpg 사진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면담한 뒤 청사를 떠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앵커: 한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서훈 한국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직접 거론해 비난한 것에 대해 미북관계에 관여하려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2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이 넉달여 만에 한국 정부의 고위당국자를 직접 거론해 비난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는 29일 ‘리경주’라는 필명의 글을 통해 서훈 한국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방미에 대해 “신성한 남북관계를 국제관계의 종속물로 격하시켰다”고 비난했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를 직접 거론하며 비난한 것은 지난 6월 24일 이후 처음입니다. 당시 북한은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정경두 전 한국 국방부 장관을 비난한 바 있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2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서훈 실장을 비난한 것에 대해 “(서 실장에 대한 비난은) 조선중앙통신의 개인 필명 기사”라며 “통일부 차원에서 특별히 언급할 사항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 당국자는 이번 북한의 대남비난에 대한 대응 입장은 아니라고 전제하며 “서훈 실장은 미국을 방문해 국익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최선의 외교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서훈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북한의 비난에 대해 “따로 응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북관계에 관여하려는 한국 정부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모든 것들은 미국, 주변국과 서로 협의해 진행할 문제”라는 서 실장의 이번 방미 발언 등이 북한의 반발을 샀다는 분석입니다.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북한이 미북관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중재역할을 바라지 않는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통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공개한 것도 미국과의 직접 협상 의지를 더욱 강하게 드러낸 차원이라는 분석입니다.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 일단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큰 협상을 앞두고 기싸움을 하는 단계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번 논평도 핵개발을 완료한 상태에서 미국과 직거래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 겁니다. 한국 정부가 우리민족끼리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면 나서지 말라고 못박은 겁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도 북한이 미북관계에 한국 정부가 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김 전 차관은 “미국과 직접 비핵화 협상을 하려는 북한으로서는 미국 입장에 동조하는 한국 정부에 불만이 있을 것”이라며 “특히 북한은 한국 정부의 관여로 미북협상이 지연되는 가능성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새롭게 교체된 한국의 외교안보 고위 인사들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지난 7월 한국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국가정보원장, 통일부 장관 등 외교안보 부문의 고위 인사들이 교체됐음에도 북한이 바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이 새로운 안보 라인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북, 남북관계와 관련해 북한이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죠.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종전선언에 대한 진전도 없고 미북관계 진전도 없습니다. 이에 대한 불만의 표출일 수 있습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당국 차원이 아닌 ‘리경주’라는 필명으로 서훈 실장을 비난한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남북관계를 고려해 수위를 조절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즉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 수해 등으로 3중고를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한국과의 기본적인 관계는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김형석 전 차관은 “한국과의 대적관계를 잠시 보류한 북한 입장에서 남북관계는 여전히 활용할 여지가 있다”며 “다만 북한의 시선이 미국에 쏠려있어 아직 남북관계 개선까지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도 “북한으로서는 미북, 남북관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어려움을 해소할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며 “남북관계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대남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미국 국무부 측은 북한의 이번 대남비난 발언에 대한 논평 요청에 29일 오후까지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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