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기로에 선 미 대북정책 <1> 트럼프와 불화 끝 ‘매파’ 볼턴 퇴장

워싱턴-김소영 kimso@rfa.org
2019.09.12
bolton_memo-620.jpg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전 국가안보보좌관.
AP Photo/Andrew Harnik

앵커: 북한 비핵화에 대해 줄곧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하며 북한에 오랜 눈엣가시였던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10일 약 1년 반만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였던 볼턴 전 보좌관의 그 동안의 행보와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의 등장으로 새롭게 펼쳐질 미북협상의 전망에 대해 집중 분석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 첫시간으로 김소영 기자가 볼턴의 미국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차관보 시절부터 최근 경질되기까지의 대북정책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 미국 행정부내 불협화음까지 자세히 살혀봤습니다.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 볼턴 전 보좌관이 백악관을 떠났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볼턴 전 보좌관의 대북정책, 특히 ‘리비아식 비핵화’ 주장 등 다양한 안보 관련 정책이 자신의 입장과 맞지 않는다며 그를 해고했습니다.

11일 트럼프 대통령의 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볼턴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리비아 모델을 언급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건 좋은 언급이 아닙니다. 카다피 정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볼턴이 주장한 '리비아식 비핵화'는 이른바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방식입니다.

2003년 리비아의 당시 지도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핵 개발 포기를 선언하고,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약속받았습니다.

하지만 카다피는 2011년 내전으로 쫓겨나 도피 중 피살됐고, 카다피의 최후를 본 북한은 리비아식 핵 포기 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볼턴을 비난해왔습니다.

RFA Graphic/김태이

볼턴이 북한으로부터 본격적인 비난을 받기 시작한 때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미국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차관이었던 볼턴은 2003년 서울에서 ‘갈림길에 선 독재정권’이라는 제목으로 한 연설에서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폭군적 독재자’, ‘착취자’, 포악한 불량국가 지도자’ 등으로 비난하는가 하면 북한 주민들의 삶을 지옥같다고 묘사했습니다.

볼턴 전 보좌관: 김정일은 수만명을 노동 교화소에 가두고 수백만명을 굶주리게 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지옥같은 악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에 이틀 뒤 북한 관영매체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인용해 볼턴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볼턴을 ‘인간 쓰레기’, ‘피에 주린 흡혈귀’라고 몰아 붙였습니다.

당시 북한 비핵화를 위한 다자 회담을 준비 중이었던 부시 행정부는 볼턴에 대한 북한의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그해 8월 중국에서 열린6자 회담에서 볼턴을 배제시켰습니다.

2005년 유엔대사로 임명된 볼턴은 2006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재지명됐지만 상원은 과거 서울 방문에서의 북한 관련 연설을 문제 삼으며 인준을 거부했고, 결국 볼턴은 대사직을 사임했습니다.

볼턴은 국무부로부터 연설 내용에 대해 사전 승인을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행정부 내에서도 ‘발언 수위가 너무 높다’는 지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볼턴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18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하면서 부터입니다.

볼턴이 공식적인 ‘리비아식 해법’ 주장으로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기 시작한 것도 이쯤부터입니다.

볼턴이 보좌관으로 임명되기 직전인 2018년 3월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첫 미북정상회담에 대해 나눴던 인터뷰에서도 북한이 리비아와 비슷한 과정으로 핵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볼턴 전 보좌관: 이번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13~14년 전에 리비아의 핵무기를 폐기하고 미국 테네시 주 오크리지의 안보단지 창고에 리비아의 핵 시설물을 보관하는 것과 비슷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좌관 임명 직후 볼턴은 미국 CBS, 폭스 뉴스 등에 잇따라 출연해 북한 비핵화에 대해 “미국은 2003~2004년 리비아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또 다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문을 통해 1차 미북정상회담이 무산될 수도 있다며 격한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김 부상은 담화문에서 "조미 수뇌회담을 앞둔 지금 미국에서 대화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들이 마구 튀어나오고 있는 것은 극히 온당치 못한 처사로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는 이미 볼턴이 어떤 자인가를 명백히 밝힌 바 있으며 지금도 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백악관은 서둘러 “북한의 비핵화 방식과 관련해 특정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다”고 해명하며 사태 진정에 나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리비아 모델이란 게 없다”며 볼턴 보좌관과 이견을 보였습니다.

볼턴의 ‘1년 내 비핵화’ 발언 역시 행정부 내 반발을 샀습니다.

그는 지난해 7월 미국 CBS, 폭스 뉴스 등에서 북한이 관련 정보를 전부 공개하면 "생화학과 핵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을 1년 이내에 해체할 프로그램을 고안했다"고 말했습니다.

국무부는 이에 대해 “일부 인사들이 시간표를 제시한 것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비핵화에 대해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한 바 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 없이 경제 제재 완화 등 어떠한 보상도 없다는 볼턴의 강경한 대북정책 기조는 지난 2월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과 회담이 결렬된 이후로도 이어졌습니다.

일부 핵시설만이 아닌 모든 핵시설과 프로그램, 생화학무기까지 모두 폐기해야 북한의 요청을 수용한다는 일명 ‘빅딜’을 고집한 겁니다.

5월부터 이어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볼턴은 트럼프 행정부와 말을 달리했습니다.

5월 말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 볼턴 당시 보좌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내 그렇지 않다며 이를 묵살했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또 이를 두고 볼턴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쟁을 속삭이는 호전광"이라며 "안보 파괴 보좌관이자 인간 오작품"이라고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이렇게 트럼프 대통령, 국무부와 이견을 보이던 볼턴 전 보좌관은 경질되기 몇달 전인 지난 6월 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주변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 깜짝 회동이 열렸을 때 볼턴 전 보좌관이 미북 정상의 회동에 참석하지 않고 몽골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핵심에서 배제됐다’는 평가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온라인 사회관계망서비스, 트위터에 올린 ‘볼턴 해고’ 소식과 함께 보좌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주 중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앵커: 지금까지 김소영 기자와 볼턴 전 보좌관의 대북정책 행보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노정민 기자가 신임 보좌관의 임명과 함께 달라질 대북정책과 미북협상에 대해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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