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하나원 휴대폰 금지에 “통신자유 과도 제한”
2024.05.30
앵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하나원 입소자들의 휴대전화 소지 및 사용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일부에 권고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독립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22년 11월 통일부에 하나원 입소 탈북민들의 휴대전화, 즉 손전화 소지 및 사용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이달 중순 입수한 국가인권위원회 침해구제 제2위원회 결정문에는 “정착지원시설에 입소한 북한이탈주민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및 통신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정착지원시설 보호대상자 생활관리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는 등 휴대전화 소지 및 사용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를 권고한다”는 통일부에 대한 권고가 담겨 있습니다.
이 같은 권고는 지난 2022년 7월 13일 화천 하나원을 퇴소한 293기 탈북민 김태권(북한 내 가족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씨의 진정에 대한 인권위의 판단 결과입니다. 당시 293기 인원은 김 씨 단 1명뿐이었습니다. 김 씨는 하나원 측이 휴대폰 사용을 금지해 자신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통신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인권위에 따르면 통일부는 김 씨의 진정에 대해 하나원의 시설현황, 운영내용의 외부 유출, 탈북민들의 신변 안전 위협 가능성을 제기하며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전화는 제출 받아 보관한 뒤 퇴소할 때 이를 반환한다고 답했습니다.
통일부는 ‘정착지원시설 보호대상자 생활관리에 관한 규정’ 제5조를 근거로 입소 탈북민들은 휴대폰을 반입,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원에 공중전화 등이 설치돼 있고 이를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교통권’, ‘통신의 자유’ 침해로 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국가인권위는 통일부의 하나원 입소자 휴대전화 소지 제한이 한국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제한하는 조치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또한 현대의 휴대전화가 소통 및 정보 공유의 필수도구라는 점, 특히 이를 통해 활용 가능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유지, 발전시키는 수단이라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권위는 앞서 가급 국가보안시설에 해당하는 외국인보호소에 대한 휴대전화 사용 제한 완화를 권고한 바 있다는 점, 한국 군부대의 사병도 일과 후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통일부 입장에 “타당성이 결여됐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헌법이 요구하는 과잉금지원칙에 반할 소지가 크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인권위는 “입소자의 기본권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보안문제는 보안통제체계 도입 및 예방교육 강화, 규정 위반 시 엄벌에 처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인권위의 이 같은 권고에도 불구하고 올해 하나원을 수료한 복수의 탈북민들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하나원에서 여전히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하나원을 퇴소한 탈북민, 권미경(가명, 북한 내 가족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씨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국가정보원이 보관하고 있던 내 휴대전화를 하나원 측에 그대로 전달했다”며 “하나원 입소 전, 휴대전화 내에 있는 연락처를 적을 수 있도록 잠깐 사용을 허용해 줬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권 씨는 “휴대전화에는 보고 싶은 가족 사진도 담겨 있는데 이를 보지 못해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권 씨가 탈북 후 소지하고 있던 휴대전화는 중국에서 만든 일종의 위조 신분으로 개통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한국 통일부 측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하나원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2023년 7월부터 본인 명의 휴대전화일 경우 일과 이후 일정시간 동안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며 “교육생들은 하나원 내 설치된 (유선) 전화를 통해 국내외 가족, 친지 등에게 연락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한국에 갓 입국한 탈북민들의 휴대전화는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중국 내 위조 신분증으로 개통한 것, 가족 등 제3자 명의로 개통한 것, 북한 국적의 본인 신분으로 개통한 것 등입니다.
통일부는 한국의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위조 신분증 및 제3자 명의의 휴대전화 사용을 불법으로 보고 인권위 권고 이후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사용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일부 입소자의 휴대전화 소지로 인해 같이 생활하는 입소자들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반영했다는 설명입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본인 명의가 아니더라도) 탈북민이 지인의 연락처를 알고 싶어할 때,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는 사진을 보고 싶어할 때 일시적으로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고 사진을 출력해주기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서는 통일부가 인권위의 권고를 행정, 관리 편의상 소극적으로 수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한반도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재원 회장은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통일부가 인권위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면 하나원 내 통신·보안 상황과 탈북민 인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새로운 규정이나 입법 조치를 취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재원 한반도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람의 모든 행위, 자유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국가 안보를 해치거나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면 근본적으로 보장돼야 합니다.
이어 이 회장은 “한국 내에서 차명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적인 목적이 많아 단속이 필요하겠지만 탈북민들은 신변 위협 등의 특수한 상황을 겪었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