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 내 전문가들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김덕훈 내각총리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한 것과 관련해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난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평안남도 간석지건설종합기업소 안석 간석지 피해 복구현장을 현지 지도했다고 22일 보도한 북한 관영매체.
이에 따르면 김 총비서는 현장에서 제방 배수 구조물 설치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바닷물에 제방이 파괴됐다며, 김덕훈 내각총리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판했습니다.
김 총비서는 최근 몇 년 동안 “김덕훈 내각의 행정경제 규율이 점점 더 극심하게 문란해졌다”며 “내각총리의 무맥한 사업 태도와 비뚤어진 관점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내각총리의 실명을 거론하며 경제난 등의 책임을 돌리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에선 당이 경제 권력을 독점해왔고 내각에는 큰 힘이 없었다”며 김 총리가 최근 실세로 평가돼온 것은 일종의 ‘희생양 만들기’ 준비 작업 이었을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경제 부문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 만큼 처음부터 김 총리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은 체제에서는 갑자기 내각을 경제 총사령탑으로 삼고 현지 지도도 김 총리가 대부분 해왔습니다. 어차피 대북제재 등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경제 회생은 어려운 상황이고 김 총리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든 김 총리는 희생양이 될 운명이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김 총비서가 현장을 둘러보며 책임자들을 ‘당적, 법적으로 단단히 문책하고 엄격히 처벌하라’고 말한 부분에 주목하며, 이는 김 총비서의 발언 가운데서도 매우 수위가 높은 것이라면서 이 역시 경제난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발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김 총비서가 팔을 걷어붙인 채 물에 잠긴 논에 직접 들어가는 모습을 연출한 것 역시 무능한 조직으로 치부된 내각과 달리 어려움을 직접 해결하는 모습을 대비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란 분석입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의 말입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 결국 책임을 내각에 돌리면서 김 총비서는 애민 정신으로 열심히 주민들을 보살피고 있다, 어려운 현 상황을 돌파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내용을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통일부는 김 총비서의 김 총리에 대한 비난과 관련한 인사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비난 강도가 높아 어떤 형태로든 그에 대한 인사 조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관영 매체에 언급된 기관에 대해 대규모 문책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김 총비서가 구체적인 태풍 피해를 언급하며 이를 김덕훈 내각의 무책임에 따른 인재로 규정했다”면서 “북한의 핵 개발로 인한 대북제재와 국경봉쇄 조처 등 잘못된 정책결정으로 초래된 경제 악화 책임을 내각에 전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