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비핵화에 얽힌 주요 이해당사자들이 북핵과 관련된 단계적 위협 감축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데 있어 세계은행이 관리하는 북한신탁기금(World Bank DPRK Trust Fund)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보도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비정부 시민단체인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군축 리더십 네트워크(APLN)는 지난달 31일 공개한 ‘북한과의 협력적위협감소(CTR+) 프로그램에 관한 정치⋅재정적 고려’ 보고서에서 과거 구소련 연방국가들의 핵폐기를 위해 시행했던 ‘넌-루가 계획’에 기초해 ‘한반도판 협력적위협감소 프로그램’의 추진을 한반도 관련 주요 이해당사국들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협력적위협감소(CTR) 프로그램이란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각국에 남아 있던 핵무기 및 관련 시설의 해체를 위해 고안된 미국의 ‘넌-루가법’에 기초한 방안으로 각국의 비핵화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단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APLN 소속의 일레인 나탈리 및 조엘 피터슨-이브르 정책연구원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한반도의 정치적 여건이 개선되면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건설적인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심사숙고된 정책 마련이 필수’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세계은행이 관리하는 신탁기금(trust fund)의 설립을 추진하는 것이 향후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보고서는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세계은행을 통해 설립된 신탁기금 모델은 다양한 목적에 맞게 조정될 수 있다”면서 “유연성이 있고 자금의 독립적인 감독과 사용이 가능한 행정 구조를 지닐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을 제외한 모든 잠재적 동반국가는 세계은행 회원들이고, 이는 그들이 북한과 관여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나아가 “북한 관리들은 세계은행 직원들과 다른 개발 관련 기관들과 실무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학습과 신뢰 구축 노력은 미래에 더 큰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보고서는 다만 세계은행에 의한 신탁기금 협정은 북한 비핵화에 관한 협력적위협감소 프로그램의 자금조달 방안으로 유망하지만, 북한과 이같은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중대한 변화가 필요한 현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북한은 최소한 대량살상무기 감축 및 군비 통제에 관한 고위급 대화를 진행하고, 중국은 세계은행 산하 북한신탁기금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는 전제 등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보고서는 아울러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보여온 미온적인 접근은 북한의 협력적위협감소프로그램 추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만약 향후 미국이 북한과 의미 있게 관여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정치적 의지를 보여준다면, 다른 나라들로부터 이러한 신탁기금에 재정적 지원이 제공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
한편 보고서는 북한의 경우 “대외원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경제적 생산성과 독립성을 높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에는 더 수용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기자 한덕인,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